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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사마귀알 100개 구해와”… 북한 군인은 귀순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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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동원, 뇌물 수수 등 만연한 북한軍 실상 WSJ에 폭로

세계일보

경기도 파주시 자유로에서 바라본 DMZ 내 우리 측 초소와 그 뒤에 위치한 북한군 초소. 세계일보 자료사진


북한에서 최전방에 배치된 군인들 사이에 뇌물 주고받기, 사역 동원하기 등 악행이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는 증언이 나와 주목된다. 국내 언론이 아니고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보도됐다는 점에서 ‘불량 국가’ 북한의 실태를 전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4일 WSJ 보도에 따르면 이 신문은 북한 군대에서 복무하다 문재인정부 첫해인 2017년 남쪽으로 귀순한 20대 초반의 노철민씨와 인터뷰를 했다. 노씨는 2017년 하반기 비무장지대(DMZ) 내 부대에 배치된 지 약 3개월 만인 같은 해 12월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자유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노씨는 군인인 자신이 총을 들고 경계근무를 서는 대신 사마귀알을 찾아 들판을 헤매고 다닌 일화부터 소개했다. 그는 상관한테 “2시간 이내에 사마귀알 100개를 찾아오라”는 도저히 실현이 불가능한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사마귀알을 구해오라고 한 것은 상관이 시장에 한방 재료로 내다 팔아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어떤 상관은 노씨에게 다가가 “진급을 원하지 않느냐”며 노골적으로 뇌물 제공을 요구하기도 했다.

“일부 병사는 부대 지휘관들에게 월 150달러(약 18만원)의 뇌물을 바치고 한겨울 경계 근무에서 빠지고, 추가 배식과 방한복을 받는 것은 물론 매주 집으로 전화까지 하는 ‘특혜’를 누렸습니다. 저는 뇌물을 줄 돈이 없어 영하 40도 밑으로 떨어진 한파 속에서 13시간 경계 근무를 섰죠. 근무를 나갈 때면 피부가 부르트고 입김에 눈썹이 얼어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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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내 북한군 초소에서 북한 병사가 철모를 쓰고 착검 상태의 소총을 든 채 경계근무를 서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 번은 노씨가 부대 배치 후 첫 사격훈련에 나갔을 때 다른 동료들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사격훈련을 피하기 위해 미리 상관들에게 뇌물을 준 결과라는 점은 나중에 알았다. 상관들이 부대에 보급된 쌀을 근처 시장에 내다 팔면서 병사들은 값싼 옥수수죽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상관은 부대 음식을 훔쳤다.

굶주림을 해결할 수 없었던 노씨는 DMZ 부대에서 야생 버섯까지 채취해 먹었다고 한다. 수개월 만에 체중이 약 40㎏까지 빠졌다.

귀순을 결정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쌀과자를 훔쳤다’는 누명을 쓴 점이었다. 그 때문에 상사에게 구타를 당하고 ‘나는 나쁜 X입니다’ 하고 자아비판을 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2017년 12월 어느 날 그는 DMZ 초소로 가는 척하다가 슬쩍 방향을 바꿨다. 소총 개머리판으로 DMZ 내 북측 철조망을 걷어 올리고 그 밑을 기어 나와 남쪽으로 내달렸다. 가슴까지 차는 물을 건너기도 했다. 내내 ‘지뢰가 터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가시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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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내 남측 철조망 부근에서 경계근무를 하는 한국군 병사. 연합뉴스


노씨는 “귀순 당시 소총과 실탄 90발, 수류탄 2개를 지니고 있었다”며 “남쪽으로 넘어온 후 한국군 병사는 ‘귀순자냐’고 물었는데, 귀순자라는 말 자체가 처음 듣는 단어였다”고 회상했다.

현재 대학생인 노씨는 주말에는 웨딩홀 뷔페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북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죄책감이 든다”며 “그래서 나는 매일 (북의 가족을) 잊으려고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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