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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무자격’ 팀닥터·‘상식 밖’ 금전 처리…비정상이 낳은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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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현 선수 죽음으로 드러난 ‘경주시청 철인3종팀’ 부조리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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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최숙현의 지인들이 수년에 걸친 집단 가혹행위를 증언하고 나섰다. 사진은 최 선수의 후배인 임주미씨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과 글. 임주미씨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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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비상식에서 비롯됐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에서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故) 최숙현 사례에 대해 스포츠계 종사자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분노했다.

가해자 중 한 명인 팀닥터는 의료행위와 관련한 어떠한 면허도 없는 인물로 밝혀졌다. 그렇다고 선수 트레이닝에 전문성을 갖춘 선수 트레이너(Athletic Trainer)도 아니다. 대한스포츠의학회 산하 단체인 대한선수트레이너협회 회장인 김용일 LG 트윈스 트레이닝 코치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AT라면 이름이라도 들어봤을 텐데, 확인해보니 그런 사람은 회원 중에 없다. 교육을 받고 있는 준회원 명단에도 없다”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문제의 팀닥터가 “비정상적인 특수관계에서 고용됐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정상적이라면 공개채용을 하거나 협회 추천을 받아 공인된 자원을 뽑게 된다.

“감독 위의 팀닥터, 인맥 등 비정상적인 특수 관계” 시각 많아
또 다른 가해 선수, 경비 명목 돈 받아 수천만원 챙긴 정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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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트라이애슬론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수영 경기를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고 최숙현은 한국 여자 트라이애슬론의 기대주였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최고 인기 종목 중 하나인 축구와 사격 같은 종목에 비하면 이번 경우는 더욱 비정상적이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대표팀이 아닌, 일반 구단들의 경우 의사를 팀닥터로 쓰기는 힘들다. 그래도 트레이너가 있고, 또 트레이너는 워낙에 물리치료사 자격증 이런 게 잘돼 있는데, 이번 경우에는 그조차도 아니라고 하니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격의 경우 물리치료사 개념으로 공개채용한다. 사격 관계자는 “의무 트레이너 2명을 두되 남녀 1명씩을 고용해 남자 트레이너가 여자 선수를 보면서 발생할 수 있는 성희롱 논란 여지를 사전에 차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여전히 인맥을 통해 유사단체의 트레이너나 물리치료사, 헬스 트레이너 등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럽게 자격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한 현역 트레이너는 “강제할 수 있는 법이 없기 때문에 자격을 갖추지 못한 트레이너를 쓰는 팀들이 여전히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협회 관계자들도 이번 사태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어떤 감독이 트레이너로 불편하게 윗사람을 쓰겠나. 회식에 동석하고, 감독 앞에서 선수를 때리고…,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아마추어 종목 감독 역시 “무자격자로 감독을 꼼짝 못하게 하는 트레이너라는 게 쉽게 이해가 안 된다. (팀닥터는) 지역의 막강한 힘이 뒷받침된 사람이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선수들의 건강과 경기력을 책임져야 하는 팀닥터지만, 가혹행위 증거로 남은 녹취에는 감독과 술을 마시며 선수를 폭행하는 상황에 가담한 정황까지 포착된다. 게다가 3일을 굶게 하거나, 20만원어치의 빵을 사다 토할 때까지 먹게 하는 등 가혹행위에도 가담했다.

금전 문제 역시 상식 밖이다. 최숙현의 유가족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팀닥터와 또 다른 가해자로 지목된 ㄱ선수가 선수들로부터 돈을 받아 수년간 몇 천만원씩 챙긴 정황이 포착됐다. 선배는 전지훈련비 명목으로, 팀닥터는 치료비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학교 스포츠에서는 전지훈련에 갈 때 트레이너 비용을 학부모에게 청구하는 경우가 있지만 실업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점은 상식 밖”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 같은 비정상적인 일의 연속에도 관리·감독 주체인 경주시의 견제를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이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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