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까지 공개될 정도로 갈등 커져 / 이대로라면 M&A 성사되긴 어려울 듯/ 이스타항공 노조, 회의록 공개 “제주항공 지시에 따라 희망퇴직 인원·보상액 맞췄다”/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구조조정 결정·구체 방안·내용은 자체적인 경영 판단에 따라 의사결정“ 반박
나란히 서 있는 제주항공-이스타항공 여객기. 연합뉴스 |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M&A)의 무산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지난 3월 이스타항공의 노선 운항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을 놓고 양사의 사장이 나눈 대화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예상된다.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인 제주항공은 그동안 이스타항공의 경영에 관여한 바 없다고 시종일관 부인해 왔으나 이번 녹취록 공개로 의심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신뢰 저하로 양사의 M&A는 무산될 가능성이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6일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이 공개한 녹취 파일에 따르면 지난 3월20일 통화에서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가 “셧다운이라는 게 항공사의 고유한 부분이 사라지는 것인데 조금이라도 영업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지만 이석주 당시 제주항공 대표는 “지금은 셧다운하는 것이 예를 들어 나중에 관(官)으로 가게 되더라도 이게 맞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재 제주항공의 모회사인 애경 그룹의 지주회사인 AK홀딩스 대표로 재직 중이다.
녹취록에서 또 최 대표는 “국내선 슬롯 중 중요한 게 몇개 있는데, 이런 게 없어지면 M&A의 실효성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지만, 이 대표는 “그건 저희가 각오하고 있다”며 “저희가 국토교통부에 달려가서 뚫겠다”고 안심시키기도 했다.
앞서 노조는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표와 최 대표 간 통화내용 일부를 공개한 데 이어 이날은 아예 6분35초 분량의 녹취 파일 전체를 공개했다.
녹취에서 최 대표는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미지급된 급여를 제주에서 다 줘야 한다”며 “그것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한다”고 우려했다.
그러자 이 대표는 “딜 클로징(종료)을 빨리 끝내자”라며 “그럼 그것은 저희가 할 것”이라고 다독였다. 이어 “딜 클로징을 하면 그 돈 가지고 미지급한 것 중에 제일 우선순위는 임금”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노조는 지난 2월부터 지속된 체불임금 해소를 두고 이스타항공의 몫이라고 주장해온 제주항공의 종전 입장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또 “협력업체에도 미지급이 많다”며 “셧다운을 하게 되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걱정”이라고 다시 우려했으나 이 대표는 “일단 제 명의로 법에 저촉이 안 되는 수준으로 협조해달라고 레터를 보냈다”며 “이제 제주항공이 최대 주주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으니 협조해달라는 레터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스타항공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발목이 잡혀 지난 3월9일 국제선 운항을 중단한 데 이어 같은달 24일부터는 그나마 남아 있던 국내선까지 아예 운행을 멈추는 사상 초유의 셧다운에 돌입했다.
이 탓에 매출 자체가 발생하지 않으면서 유동성 위기가 극심해져 2월에 일부만 지급했던 직원 급여를 3월부터는 아예 내놓지 못했고, 결국 체불임금 문제가 양사의 M&A에 큰 걸림돌로 부상했다.
앞서제주항공은 지난 1일 “열흘 내 선결 조건을 다 이행하지 않으면 (M&A)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취지의 최후통첩을 담은 공문을 전달 이스타항공 측에 전달했다. 체불 임금과 각종 미지급금 등 800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15일(10영업일) 내 갚으라는 게 그 골자다.
이스타항공 노조는 이처럼 셧다운이 제주항공의 지시에 따른 것인 만큼 4∼6월 임금 미지급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의 셧다운을 지시한 바 없으며 “작년 12월부터 조업비와 항공 유류비 등을 장기 연체해 이스타항공 경영진이 운항 중단을 결정한 것으로 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한편 이번 녹취 파일 공개에 대해 최 대표는 “어떤 경로를 통해 유출됐는지 모르겠으나 유감”이라며 “다만 통화 내용에 나오듯 딜이 완료되면 미지급 임금을 제주항공이 책임지기로 약속했고, 이외에도 수차례 이 대표와의 만남에서도 이런 내용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동안 체불임금 문제를 놓고 이스타항공과 대주주에 도의적인 책임을 묻는 비난이 있었지만 M&A 성사를 위해 제주항공과의 약속을 공개하지 못하고 비난을 감수해왔다”고 덧붙였다.
제주항공은 이에 대해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후 쌍방간 계약 진행을 위해 논의하고 상호 노력하자는 내용이며 어디에도 제주항공이 지시하는 대화 내용은 없다”며 “특히 체불임금(2월)은 딜 클로징을 빨리해서 지급하자는 원론적 내용이며, 클로징 전에 책임지겠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고 반박했다.
제주항공은 그동안 이스타항공과의 M&A 진행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쟁점에 대해 이르면 7일 공식 입장을 밝힌다는 방침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양사의 M&A가 무산될 가능성이 더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녹취록까지 공개될 정도로 갈등이 커진 상황”이라며 “이대로라면 M&A가 성사되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노조는 또 양사의 경영진 회의록 등을 확보했다며 공개했다.
한 문서에는 운항 승무직 90명(기장 33명, 부기장 36명, 수습 부기장 21명)과 객실 승무직 109명, 정비직 17명, 일반직 189명 등 직군별 희망퇴직 규모와 보상액이 상세히 적혀 있다. 모두 405명에게 총 52억5000만원을 보상하는 방안이다.
또 다른 문서인 3월9일 양사 경영진 간담회 회의록에는 제주항공이 기재 축소(4대)에 따른 직원 구조조정을 요구했고, 이스타항공이 구조조정에 대한 자구 계획은 있으나 급여 체납으로 시행 시점이 늦어지고 있음을 전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제주항공이 추가 대여금 50억원을 지급할 때에는 구조조정 관련 인건비로만 집행할 계획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박이삼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 위원장은 “결국 제주항공의 지시에 따라 희망퇴직 인원과 보상액을 50억원에 맞춘 것”이라며 “지난 4월에 구조조정을 전체 직원의 45%로 정했다가 이를 다시 절반으로 줄이며 고통 분담을 운운했지만 이미 계획이 정해져 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3월10일 실무 임직원 간담회 회의록에는 제주항공이 인력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양사 인사팀이 조속히 실무 진행하기로 의견을 나눴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 제주항공이 비용 통제를 이유로 전 노선의 운휴를 요청했고, 이스타항공은 영업 의견을 취합해 최종 의사를 결정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제주항공은 “노조의 주장과 달리 이스타항공의 구조조정은 이스타항공에서 주식매매계약(SPA) 체결(3월2일) 이전부터 기재 반납 계획에 따라 준비된 사안”이라며 “3월9일 오후 5시쯤 이스타항공에서 보내준 메일 속 첨부 파일의 최초 작성일이 지난 2월21일로, SPA가 체결된 3월2일 이전 이스타항공에서 기재 조기 반납을 결정한 시기에 이미 작성됐다”고 반박했다.
한마리도 노조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지적이다.
또 이스타항공이 SPA 체결 이전부터 기재의 일부 조기 반납 사실과 추가 조기 반납 계획 등을 설명하면서 이에 수반되는 인력운용 이슈에 대해서도 구조조정 계획이 있음을 수차례 언급했다는 것이 제주항공의 주장이다.
제주항공 측도 아울러 이스타항공이 메일로 보낸 구조조정 계획안을 함께 공개했다.
제주항공은 거듭 “이스타항공이 구조조정을 하기로 한 결정과 구체적인 방안, 내용은 자체적인 경영 판단에 따라 의사결정한 사항”이라며 “제주항공 측에서 요구하거나 강제한 사실은 없으며, SPA상 그런 권한이 있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양사 간담회 회의록에 적힌 내용도 “이스타항공이 결정·추진한 구조조정 계획의 진행 상황을 매수인으로서 확인한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3월9일 점심 시간에 양사가 모여 구조조정에 대한 협의를 하고 2시께 헤어졌는데 (이스타항공이) 5시에 몇명을 구조조정한다는 메일과 엑셀파일을 보내왔다”며 “직군별 구조조정 인원과 소요 금액을 그리 빨리 만들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나아가 “이스타항공이 미리 준비했으니까 제주항공에 보내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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