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우리 시대를 새로운 시대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11년 9월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백두대간 종주를 갓 마쳐 턱수염이 가득한 한 남성이 안철수 현 국민의당 대표를 껴안았다.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을 거치며 시민사회계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던 박원순 변호사가 ‘정치인 박원순’으로 거듭난 순간이다. 안 대표의 전격적인 양보에 힘입어 야권 단일 후보가 된 박원순 변호사는 한 달 뒤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됐고 2014년, 2018년 선거에서도 연거푸 당선됐다. 서울시장 사상 처음으로 3선에 성공한 박 시장은 이제 마지막 정치적 도전인 차기 대선에 나서려고 했지만 9일 극단적인 선택으로 도전을 중단하게 됐다.
● “내 직업은 ‘소셜 디자이너’”
시민사회에서 정치권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박 시장은 2011년 나경원 후보, 2014년 정몽준 후보, 2018년 김문수 후보 등 보수 진영의 후보들을 연이어 물리쳤다. 3선에 성공하며 정치적인 입지도 한층 강화됐다.
정치 입문 전부터 명함에 ‘소셜 디자이너’라고 적고 다녔던 박 시장은 시장 당선 뒤에도 이 호칭을 가장 좋아했다. “패션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처럼 우리 사회를 어떻게 하면 조금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까 이런 걸 늘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박 시장의 설명이었다. 그의 공관 1층 절반은 지금까지 각종 사회 이슈와 관련해 모았던 국내외 자료와 신문 스크랩, 연구서들로 꽉 차있다. 박 시장은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는 걸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늘 이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한민국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그의 열망은 대선 도전으로 이어졌다. 박 시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촉발된 2017년 대선 준비에 본격 나섰다. 그러나 낮은 대중적 지지율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박 시장은 “정말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열망으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며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불참을 선언했다. 박 시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2017년 대선을 준비하며 시장 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박 시장이 절감했다”며 “2022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긴 호흡으로 준비하겠다는 의욕이 강했다”고 말했다.
당내 세력 부족을 절감한 박 시장은 4·15총선을 앞두고 ‘박원순 계’의 출마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 결과 행정부시장 출신의 윤준병 의원, 정무부시장 출신의 김원이 의원, 비서실장 출신의 천준호 의원 등이 21대 국회에 입성했다.
● “대통령은 운명적인 직책”
아름다운 가게 등으로 시민사회의 활동 방식 자체를 바꾼 박 시장은 시정에서도 아이디어 맨이었다. 하지만 시장 임기 내내 박 시장은 “각인되는 성과가 없다”는 평가도 받았다. 박 시장 스스로도 “박원순하면 팍 떠오르는 브랜드가 없다는 걸 안다”면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토목, 개발로 인기를 끄는 정책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신 그는 ‘서울로(路) 7017’과 같은 도시재생, 공공자전거인 ‘따릉이’ 등 생활 밀착형 정책에 집중했다.
부동산 대책 등 중앙정부와의 협의를 거쳐야 할 사안은 종종 즉흥적으로 밀어붙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18년 “여의도를 통으로 개발할 것”이라며 여의도·용산 개발 청사진을 밝혔던 게 대표적이다. 곧장 관련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중앙정부와 논의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런 우여곡절에도 박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재난기본소득 논의를 주도하며 차기 대선 준비를 이어갔다. 박 시장은 6일 열린 민선 7주기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차기 대선과 관련해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안되고 싶어도 하게 되는 운명적인 직책”이라고 했다. 박 시장은 정치 입문 이후 9년 동안 꾸준히 그 운명의 자리를 준비했지만, 이날 그의 정치 인생도 갑작스레 막을 내렸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