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네덜란드 교육과정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다뤄야한다”는 온라인 청원을 제기한 10대 학생 3명. (왼쪽부터) 조나 숨부누, 레키에샤 톨. 베로니카 비혼|BBC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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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주의자를 만드는 건 교육과 환경입니다.” 네덜란드 10대 학생 세명의 외침이 의회를 넘어 사회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노예무역으로 ‘황금기’를 열었는데,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교육’ 없이는 기나긴 인종차별 고리를 끊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교실에서 시작된 세 소녀의 인종차별 반대 외침은 사회를 바꿔가고 있다고 BBC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고등학교 졸업반 친구 사이인 베로니카 비혼, 조나 숨부누, 레키에샤 톨 등이 “학교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다뤄야한다”는 온라인 청원을 지난달 12일 네덜란드 정부 사이트에 올렸다.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출신인 세 학생은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학교에서부터 ‘차별’이 뿌리내린다는 생각에 청원을 계획했다. 베로니카는 “어두운 피부색 때문에 학교 친구들로부터 ‘똥색 피부’라고 놀림을 당하곤 했다”면서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서는 학교 커리큘럼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미국과 유럽 등 전세계 곳곳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네덜란드타임스에 “인종차별주의자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부모, 학교, 환경에 의해 교육되는 것”이라며 “학교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청원 배경을 설명했다.
문제의식이 컸던 만큼 이들의 청원 내용은 구체적이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인종 다양성을 반영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유치원에서는 백인 뿐 아니라 유색인종을 표현하는 인형들을 배치해야 한다. 교육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돼야 한다. 초등학교 과정에서는 인종차별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이 마련돼야 하고, 학생회는 박물관에 서구문화 외에도 다양한 민족의 역사를 반영하는 전시를 제안할 수 있다. 고등교육에서는 정규 과목에 의무적으로 인종차별 주제가 포함돼야 한다. 역사시간엔 네덜란드 황금기에 자행된 노예무역과 이주노동을 다뤄야 한다. 학생들은 음악, 드라마, 영화 등 문화 전반에 깔린 차별 코드를 읽어내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의 온라인 청원 내용은 연예인과 정치인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면서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청원이 올라온 지 24시간 만에 4만명이 서명했고, 일주일이 지나자 숫자는 6만명으로 늘어났다. 네덜란드 하원은 4만명 이상이 서명한 청원에 대해 입법화를 논의해야 한다. 야당인 노동당에서 이들의 청원을 검토한 뒤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교육개정 법안을 밀어붙였고 지난달 23일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됐다. 하원 의원 150명 가운데 125명이 찬성한 만큼 상원에서 이 법안을 거부할 가능성도 낮다.
이들의 온라인 청원이 성과를 올리면서 식민주의 역사를 반성하자는 여론도 높아졌다. 당장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운영하며 인도·동남아시아·중국 등에서 인권과 자원을 착취한 요하네스 반 헤우츠, 피트 헤인, 요한 반 올던바르너펠트 등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매년 12월 5일 검은 얼굴 분장을 하고 거리를 행진해 인종차별 논란을 불렀던 ‘즈바르트피터(검은피터)’ 전통의 지속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역사학자 알리샤 스리커는 “피부색이 아닌, 열린사회가 ‘더치(네덜란드인)다움’을 상징하게 될 것”이라고 BBC에 말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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