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서구 검암동 한 빌라에 공급된 수돗물에서 지난 13일 오후 발견된 유충. 연합뉴스 |
“어른들이야 수돗물로 씻는다고 하지만 아기는 어떻게 하죠”
15일 인천시 서구 검암동에 사는 이모(39·여)씨는 아이를 씻길 때 생수를 사용하고 있다. 수돗물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25개월 된 아이를 이전처럼 수돗물로 씻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씨는 지난 14일 오전 샤워를 하고 나서 수도꼭지 필터에서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그는 “동네 인터넷 카페에 ‘수돗물에서 벌레가 나왔다’는 글이 올라와 확인을 위해 전날 수도꼭지 필터를 새것으로 바꿨다”며 “새 필터에 붉은색 알처럼 생긴 것과 실 같은 유충이 보였다”고 말했다. 인천 상수도사업본부에 이 같은 사실을 적어 민원을 넣었지만, 생수를 보내준다는 말 외에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고 한다. 이씨는 “이후 실지렁이 같은 것이 필터에 나타나서 다시 새것으로 교체했다”며 “예전보다 필터 변색 속도도 빨라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인천시에 "수돗물에 유충이 보인다"는 민원이 처음 제기된 건 지난 9일이다. 인천 서구 왕길동에서다. 이후 14일까지 모두 23건의 민원이 제기됐지만 명확한 원인 규명이 지체되면서 주민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인천 서구 지역 한 맘카페에 서구 당하동 한 가정집 수돗물에서 유충이 발견됐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너나들이 검단신도시 검암맘 카페] |
인천시 주민들은 지난해에도 붉은 수돗물 사태로 곤욕을 치렀다. 인천 서구에서는 지난해 5월 30일 수돗물 대신 붉은 물이 나온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이후 피해 신고가 잇따랐지만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수질검사 결과 적합 판정이 나왔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그러나 붉은 수돗물은 수계 전환 과정에서 기존 관로의 수압을 무리하게 높이다가 수도관 내부 침전물이 각 가정에 흘러간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약 63만명이 붉은 수돗물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대응이 미흡했다며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환경부는 적수 사태와 관련해 “수계전환으로 발생할 여러 문제점이 예상 가능한데도 문제의식 없이 조치했다”며 “인천시의 사전 대비와 초동 대처가 미흡했던 거의 100% 인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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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 접수 후 엿새째 원인 규명도 못 해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 당시 한국환경공단이 시행한 수돗물 검사 모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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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는 당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수돗물 내 유충 발견 신고가 이어지면서 시 수돗물 관리 구조에 여전히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첫 신고 접수 후 5일이 지난 14일 오전에서야 대응 상황을 공개했다. 인천시장이 참석하는 긴급상황 점검 회의도 14일 처음 열렸다. 유충 종류도 이날에서야 확인됐다. 서구 왕길동·당하동·원당동·마전동 3만6000구에 직접 음용을 자제하라고 당부했을 뿐 주민들을 위한 추가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인천시는 첫 신고 접수 엿새가 지났지만 명확한 원인 규명도 하지 못하고 있다. 시는 서구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서구 공촌정수장에서 발생한 깔따구 유충이 수도관을 거쳐 각 가정으로 흘러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정수장 내 활성탄 여과지(미량의 유기물질을 걸러내는 장치)에서 발견된 유충과 민원이 접수된 가정에서 발견된 유충의 DNA가 일치하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더러운 물에 사는 깔따구 유충이 어떤 경로로 가정의 수돗물 필터까지 흘러갔는지 밝혀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일부 전문가는 활성탄 여과지에서 유충이 발견되는 경우는 드문 일이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시 관계자는 “깔따구 유충 중 내성이 생긴 일부는 염소소독에도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었다”며 “정확한 원인은 계속 조사해봐야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유충을 상대로 실시한 DNA 검사 결과는 이번 주 후반이 돼서야 나올 예정이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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