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대응 내용 없어"…"수질 기준 외 문제 대처에 곤란"
시민 단체 "유형별 매뉴얼 필요"
인천 수돗물서 유충 검출…원인 파악은 아직 (CG) |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인천시가 '붉은 수돗물' 사태를 계기로 만든 '수돗물 수질 민원 대응 매뉴얼'을 수돗물 유충 사고 때 제대로 지키지 않아 매뉴얼이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환경부·서울시·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수돗물 수질 민원 대응 매뉴얼은 여러 이유로 수돗물 공급 과정에서 수질 민원이 발생할 경우 적용한다.
환경부, 서울시,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해 인천에서 붉은 수돗물 사고가 발생하자 지방자치단체 등의 수돗물 수질 관리를 위해 기존의 내용을 보완할 수돗물 수질 민원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박영길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장은 지난 15일 언론 브리핑에서 "(매뉴얼 중) 벌레와 관련한 부분은 따로 없다"며 "환경부 표준 매뉴얼이 있어서 그 매뉴얼대로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수돗물 수질 민원 대응 매뉴얼은 수질 민원이 간헐·산발·국소적으로 발생할 경우 현장 확인을 통해 확산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했다.
검토 결과는 즉시 상수도사업소장에게 보고하고,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관련 부서와 경찰서 등 관계 기관에도 상황을 알리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지난 9일 '수돗물 유충' 발견 민원을 처음 접수한 인천시 서부수도사업소는 당일 현장에서 시료를 채취한 뒤 나흘 만인 13일에야 사업소·관리소·정수장·급수부 관계자가 참석한 대책 회의를 열었다.
박남춘 시장에게는 회의가 끝난 뒤 첫 보고가 이뤄졌으며, 관계 기관인 인천시교육청에는 다음날인 14일 '급식과 음용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지난 13일 오후 11시께 공촌정수장에서 유충이 발견된 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 곧바로 보고했다는 입장이지만 상황 전파가 너무 뒤늦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인천 서구 일대 학교 39곳은 민원이 제기된 지 닷새 만에 뒤늦게 급식을 중단했다.
급식이 중단된 서구 한 중학교 교장은 "수돗물 유충 사실을 전혀 전달받지 못한 9일과 10일에도 야채류가 포함된 생채식을 수돗물로 씻어서 급식으로 제공했다"며 "교내에서 유충이 발견된 적이 없지만 학부모들은 불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득 쌓인 미추홀참물 |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피해 규모가 아닌 피해 유형별로 매뉴얼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매뉴얼은 간헐·산발·국소적인 민원, 100가구 이상 또는 사흘 이상의 민원, 단독 300가구나 아파트 2개 단지 이상 또는 7일 이상의 민원 등 대응 단계를 3개로 나눴다.
유충이나 벌레, 적수(赤水) 등 수질 민원을 유형별로 나눠 대응할 수 있는 지침은 나와 있지 않다.
적수와 달리 유충은 맨눈으로 잘 보이지 않아 관련 민원이 단시간에 급증하는 것 자체가 어렵지만 이 같은 특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에 환경부 관계자는 "(유충) 관련 민원이 여름철 통상 발생할 수 있는 민원이어서 바로 매뉴얼 단계를 따르기가 곤란한 측면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라며 "매뉴얼을 떠나 결국 문제는 정수장 유지 관리가 제대로 안 됐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백명수 수돗물시민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지금까지 나온 수돗물 관련 사고나 문제를 유형화해서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경기도에서도 같은 민원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문제가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전수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충처럼 미생물이 아닌 유기물은 수질 기준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며 "수질 기준 외 부분에서 발생하는 수돗물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공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ham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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