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설적인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인 존 루이스 하원의원이 17일(현지시간) 타계했다. 미국 전역이 추모 분위기다. 과거 루이스 의원과 설전을 벌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튿날 전국 공공기관에 조기를 내걸라고 지시했고, 트위터에 짧게나마 추모글을 올렸다.
췌장암을 앓다가 80세로 타계한 루이스 의원은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을 이끈 6명의 거물들, ‘빅 식스(Big Six)‘의 한 명이다. 킹 목사를 비롯해 5명은 이미 모두 세상을 떠났고 루이스 의원만 남아 있었다.
앨라배마주 트로이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루이스 의원은 15세 때인 1955년 킹 목사의 연설을 라디오에서 처음 듣고 열렬한 추종자가 됐다. 그 해 12월 앨라배마의 몽고메리에서 흑인 여성운동가 로자 파크스가 ‘백인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버스에서 내리라는 요구를 거부하다 체포됐다. 공공장소에서의 흑백 분리를 규정한 ‘짐크로법’에 맞선 시위가 앨라배마를 넘어 미국 전역으로 번졌고, 루이스 의원도 적극 참여했다. 학생운동단체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SNCC) 설립을 이끈 그는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로 유명한 1963년의 워싱턴 행진과 1965년 앨라배마주 셀마 행진 등에도 적극 참가했다.
그는 1981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시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87년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 하원에 진출한 이래 지금까지 흑인과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왔다. 2001년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식을 보이콧해 화제가 됐고, 2016년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사건 뒤에는 워싱턴의 의사당에서 총기 규제를 주장하는 의원 연좌시위를 주도했다.
2011년 그에게 ‘자유훈장’을 수여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애도 성명에서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기 전 나는 그를 껴안고 그의 희생 덕분에 내가 거기 있게 됐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중 한 명”이라고 했고, 민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조 바이든 전 부통령도 “그는 언제나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았던 도덕적 잣대였다”고 말했다.
루이스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과는 껄끄러운 사이였다. 루이스 의원은 ‘러시아와 공모해 당선된 인물’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했고,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자들을 범죄자 취급했을 때에는 ‘인종주의자’라 대놓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에 “루이스 의원은 끔찍하게 허물어진 지역구를 바로잡는 데에나 시간을 쓰라”, “말만 하고 행동은 없는 사람”이라는 글을 올리며 공격했다.
그랬던 루이스 의원이 타계하고 애도사가 줄을 잇자,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에 “민권 영웅 존 루이스의 별세 소식에 슬픔에 잠겼다”는 추모글을 올렸다. “멜라니아와 나는 그와 가족들에게 우리의 기도를 보낸다”고 적었다. AP통신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버지니아주의 자기 소유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난 뒤에야 추모글을 적었다며 “루이스 의원 별세 14시간 뒤”였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백악관을 비롯해 모든 공공건물과 군 시설, 해외 미국 시설에서 조기를 게양하라는 포고령에 서명했다. 하지만 인종주의를 부추겨온 트럼프 대통령이 루이스 의원을 형식적으로 추모하는 것을 오히려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하원 흑인의원 모임인 블랙코커스를 이끄는 민주당의 카렌 배스 의원은 트위터에 “이 나라가 국가적 영웅을 추모하는 동안에는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아달라, 루이스 의원의 삶에 대해 아무 말도 말아 달라”며 “당신의 대변인이 성명을 냈으면 그걸로 끝내달라”는 글을 올렸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보다 먼저 트위터에 “루이스 의원은 민권운동의 상징이었고 결코 잊히지 않을 영원한 유산을 남겼다”고 밝혔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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