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인간이었지만 피해자는 글자였다”
세계 최대 아동성착취 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 운영자 손정우(24)는 왜 징역 1년6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처벌만 받았을까. 전문가들은 이러한 판결이 가능했던 원인으로 형사사법절차에서 배제된 피해자의 목소리를 꼽았다.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손정우 이대로 풀어줄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경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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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손정우 이대로 풀어줄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는 이번 사건을 “피해는 있는데 피해자 목소리는 없는 사건”으로 규정했다. 그는 “판결문에 3000개가 넘는 파일, 36만개가 넘는 다운로드 횟수는 있어도 피해자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피해자 목소리가 지워졌는데 어떻게 높은 처벌이 나올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가장 안타까운 점으로는 “피해자 지원을 하고 싶어도 피해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을 꼽았다. 손씨가 수사기관에 한 진술에 의하면 W2V 사이트 회원수는 128만명이고, 압수된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은 약 17만개에 달한다. 하지만 지금도 정확한 피해 규모는 가늠조차 어렵다. 아동·청소년인 피해자들이 여전히 학대와 폭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원의 미국 인도 불허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6일 손씨의 범죄인 인도 청구를 기각하며 “국내 회원들의 수사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손씨가 고작 징역 1년6개월을 받았는데 회원들한테 무슨 처벌이 내려지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W2V 회원 42명에 대한 판결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유설희 경향신문 기자가 분석한 회원 42명의 1심 재판 결과에 따르면 징역형에 집행유예가 선고된 경우는 6건 뿐이며, 대부분이 100만원에서 500만원 사이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관련기사: W2V 운영자 인도 불허 ‘후폭풍’…거세지는 사법부 비판). 유 기자는 “사회와 사법부가 아동성착취물 범죄를 무면허 운전과 비슷한 경범죄로 취급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손씨는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성인 음란물은 올리지 마시오’라는 공지를 올리고, 이전에 없던 영상을 올리는 회원들에게 포인트를 지급했다. 사실상 성착취 영상 제작을 유도하고 독려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재판부는 “회원들이 제작한 영상도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감형 사유로 적시했다.
미국 연방검찰의 공소 내용에는 손씨의 ‘제작’ 혐의가 명확하게 적시돼있다. 반면 한국 검찰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수입·수출한 행위’를 처벌하는 청소년보호법 제11조1항 대신 ‘영리목적 배포·상영’을 처벌하는 11조2항 등을 적용했다. 만약 11조1항이 적용됐더라면, 법정형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올라간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현행 법상 ‘제작’은 특정한 제작 현장에서 음란‘물’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상정하고 사용한 용어이기 때문에 실제 아동 성착취 사건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한사성’에 가장 많이 접수되는 온라인 그루밍 유형은 성적 촬영물을 만들게 하는 사례”라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해 성적 착취물을 스스로 찍게 만드는 행위도 제작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심윤지·오경민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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