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팀 아이텔 그림 `멕시코 정원_전경2`. [사진 제공 = 대구미술관] |
두 여자가 마주 보고 있지만 그들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금속 구슬에 비친 두 사람과 화면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의 방향도 모두 다르다.
독일 작가 팀 아이텔(49)이 지난 3~5월 파리 작업실에서 완성한 신작 '멕시코 정원_전경2'는 코로나19로 인한 인간의 고립을 은유한다. 검은 옷 여인이 금발 여자가 그려진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지, 창밖 정원 속 금발 여자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 사이에 넘을 수 없는 투명한 벽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전염병으로 전대미문의 격리와 단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이다. 동시에 '코로나 시대, 당신 혼자만 고독한 게 아니야'라고 토닥거리는 것 같다.
아이텔은 미술 잡지 '쿤스트포럼 인터내셔널'을 통해 "나는 화가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 혼자 있는 일상에 익숙하다"며 "현재의 침묵은 아름답고, 들이마시는 공기의 맛도 인공적이지 않아서 좋다. 아마 우리가 추구하는 깨끗한 환경의 전초전인 듯하다"고 코로나 시대를 긍정한다.
외롭고 불안한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전하는 아이텔의 그림이 코로나19 패닉을 경험한 대구 시민을 위로하고 있다. 90일 만에 문을 연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개인전 '팀 아이텔-무제(2001~2020)'가 지난 7일부터 하루 관람 제한 인원 200명을 꽉 채우며 순항 중이다.
등장인물은 같지만 다른 구도를 보여주는 '멕시코 정원_전경1' 등 신작 3점을 포함해 20년 작업 여정을 보여주는 대표작 66점, 그림의 배경이 된 사진 370여 장, 작품에 영향을 준 서적 30여 권을 선보인다. 아이텔은 일상의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한 뒤 그 이미지들을 조합해 제3의 공간과 시간을 그리는 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전시장에 걸린 또 다른 신작 '연속(커플)'은 코로나 시대 돌파구를 찾는 사람들을 은유한다. 거대한 벽들에 가로막힌 남녀 커플 2쌍이 틈새로 향하고 있다. 밀집한 사람들을 그린 '테이블 주위의 사람들'과 '오프닝'은 전염병으로 절제하는 모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코로나19 방역에 애쓰는 의료진과 소시민을 조각한 김성수 `사람을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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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오지 못해 하루 2~3시간 영상회의를 통해 이번 전시를 완성한 아이텔은 한 벽면 전체를 격자 유리창으로 만든 대구미술관 전시장 사진을 보고 비슷한 풍경 그림들을 보냈다. 여인이 미술관 창밖을 내다보는 'MMK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잔디밭이 펼쳐진 그림 앞에 선 여자가 망원경을 들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미술관 풍경', 창문을 지나치는 여인을 그린 '라이프치히 현대미술관(블랙)' 등이 전시장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격자무늬 작품 앞에 선 여자를 그린 '빨강과 파랑'은 네덜란드 작가 피터르 몬드리안에게 받은 영향을 담았다. 선만 그어도 공간감이 생기는 데 매료된 아이텔은 몇 개 선으로 모호하고 추상적인 공간을 만든 소품을 펼쳤다.
대작 '검은 모래' 속 푸른 하늘에선 구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텔은 화면에 꽉 찬 그림을 그린 뒤 하나씩 지워 나가면서 꼭 필요한 형태만 남긴다. 그 작업 과정이 길어 연간 6~10점밖에 완성하지 못한다. 작품 수가 적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어 8개국 50여 곳 소장처 협조로 이뤄진 이번 대규모 전시는 10월 18일까지 열린다.
맞은편 전시장에서는 대구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하는 사진 작가 정재규(71) 개인전 '빛의 숨쉬기'(10월 18일까지)가 펼쳐져 있다. 30여 년간 사진 이미지를 잘라 가로세로로 교차시키는 '올짜기' 기법, 찰나를 일필휘지하는 서예 등을 동원한 조형사진(Plastic Photography)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생트 빅투아르산 후경' '아치 아틀리에' 'HM53(앙리 마티스)' '만 레이(Man Ray)' '경주' 시리즈 등 대표작을 펼쳤다. 사진을 해체해 기하학적으로 재배열한 작품들이 새로운 풍경을 창조한다. 암 투병 중인 작가가 혼신을 다한 신작 5점은 불국사, 석굴암 본존불, 경주시내 반월성 앞 연못의 연꽃 등을 담았다.
1층 전시장에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삶의 가치를 모색하는 '새로운 연대' 전(9월 13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장용근, 김안나, 오정향 등 작가 12명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강조하는 작품을 펼쳤다. 특히 김성수 작가가 코로나19 방역에 애쓰는 의료진과 소시민을 정성스레 조각해 빽빽하게 정렬한 나무 작품 '사람을 만나다'가 전염병으로 메말라가는 인정(人情)을 되살려준다.
대구미술관 로비에는 붉은색·녹색 소쿠리 5376개를 높이 16m로 이은 최정화 설치작품 '카발라'가 매달려 있다. 어느 집 부엌에서나 볼 수 있는 소쿠리로 이룬 장관은 다시 찾은 일상을 의미한다.
[대구 =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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