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
‘어린 왕자’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우편기 조종사였다. 자전 소설 ‘야간 비행’에서 그는 우편물을 가득 싣고 밤하늘을 날며 발아래 멀리 반짝이는 농촌마을 불빛들과 교감한다. 드문드문 집집에서 새어나온 불빛 하나하나에 우리네 일상의 갖가지 사연들이 배어 있다는 생각에서다. 집은 나와 내 가족을 언제라도 반겨주고 보듬어주는 심신의 안식처다. 살 집은 입을 옷, 먹을 음식과 함께 인간 생존의 3대 기본 아닌가.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3년간 서울의 25평 아파트값이 4억5000만원 올라 상승폭으로는 1990년대 중반의 김영삼 정부 이후 최악의 기록이라 한다. 서울뿐인가. 수도권에도 10억원을 훌쩍 넘긴 집들이 도처에 즐비하다. 서민으로 태어나 매달 100만원씩 아등바등 저축해도 10억원을 손에 쥐려면 한평생(83년)을 온통 바쳐야 한다. 한마디로, 집값이 미쳤다.
집값 상승세가 세계 주요 도시의 공통적 현상이긴 하다. 지난 20년간 나라마다 낮은 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집값을 끌어 올리는 데 한몫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3년간 집값 상승률에서 왜 하필 서울이 홍콩, 뉴욕, 파리 등 쟁쟁한 대도시를 죄다 제치고 홀로 선두를 달려야 하나.
‘투기수요 근절’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 직후부터 지금껏 외곬으로 표방해온 주택정책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투기수요만 잡으면 주택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본 것이다. 정부는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 조정대상지역을 따로 정해 놓고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대출 규제를 차별적으로 강화했다. 고가주택에 중과세를 부과하고 갭 투자도 억제했다.
문제는 이런 교조적 규제가 오히려 시장불안을 조성하고 집값 상승 기대를 자극해 실제로는 집값 상승의 강력한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날로 번지는 불길을 잡겠다며 정부가 부질없이 점점 더 큰 맞불(더 강력한 전방위적 규제)을 놓은 데 있다. 덕분에 집값 상승의 악순환만 초래됐다. 규제가 강화될 때마다 한층 더 높아진 시장의 집값 상승 기대가 주택수요를 계속 밀어 올려 집값 상승을 가속화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6월과 7월 정부가 예고한 역대급 세금·대출 규제가 목전에 닥친 요즘, 서울·수도권의 집값도 전셋값도 날 새기 무섭게 뛴다. 특히 ‘임대차 3법’의 전격 시행으로 시장불안이 극에 달했다. 오늘의 패닉바잉은 문재인 정부가 시장을 난폭한 규제로 짓이겨 빚어진 터무니없는 혼란이다. 지속 불가능한 패닉바잉을 오늘 한껏 부추겨 훗날 유동성 약발이 다하는 순간 패닉셀링으로 급반전되길 노리기라도 한 걸까.
이제 집은 가진 이에겐 탐욕을, 없는 이에겐 공포를 각기 확대 재생산하는 애꿎은 대상이다. 정부가 주도한 ‘시장과의 3년 전쟁’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됐다. 집이 많든 적든, 있든 없든, 고가든 아니든, 투기꾼이든 실수요자든, 주택 보유와 거래에서 아무도 중과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더기 규제더미로 시장엔 왜곡만 그득하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시장은 막강하나 늘 지혜롭진 않다. 지난 3년간 문재인 정부의 연이은 규제 포화에 시장은 군집행동과 과잉반응으로 맞섰다. 이는 지혜로운 시장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반시장적 규제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이제라도 집값 안정을 진정 원한다면 그간의 정책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요 시장 신뢰를 구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더 늦기 전에 문재인 정부는 판을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 매도자 우위의 시장 특성과 시장참여자들의 유인구조를 십분 감안한 중장기 정책패키지를 마련해야 한다. 고착화된 집값 상승 기대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정부는 자신의 모든 정책역량을 쏟아 부어야 한다.
정부가 올바른 비전과 접근으로 시장과 국민에게 믿음을 주고 시장은 지혜롭게 화답하는 그런 ‘평화’가 과연 올 것인가.
김홍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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