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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중국의 붉은 별 - 에드거 스노 [윤중목의 내 인생의 책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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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의 로드무비

[경향신문]

경향신문

“장소의 이동을 따라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영화 또는 그러한 장르를 일컫는 말. 여행, 도주 등을 중심 플롯으로 사용하며 여러 공간을 경유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사건들을 통해 어떤 의미를 터득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영화사전>(media 2.0 펴냄)에 기술된 ‘로드무비(road movie)’의 정의다. 이에 부합하는, 자, 영화역사상으로 아니 인류역사상으로 최대규모의 로드무비가 있었으니. 때는 1934년 10월에서 1935년 10월까지 368일간이었고, 대륙 내 11개 성(省)에 내달리는 18개 산맥과 24개 강을 타 넘었으며, 10만 홍군(紅軍)이 월등한 병력의 국민당군과 계속된 전투 끝에 불과 8000명만 살아남았던, 그렇듯 이동거리 총 1만2000㎞의 초대형 로드무비가 있었으니. The Long March, 바로 대장정(大長征)이었다!

모택동, 주은래, 주덕, 임표, 팽덕회, 그리고 등소평. 하나하나 이름만 들어도 대륙의 웅혼한 기운이 꽉 차오는 듯한, 로드무비 대장정의 빛나는 주연들, 스타들. 말 그대로 ‘중국의 붉은 별’들 아니었나. 그들의 대장정이 그러나 얼마나 극한의 고난 행군이었는가는 불문가지라. 배고픔을 견디다 견디다 가죽 허리띠를 삶아 먹었고, 심지어 앞서 지나간 동료들 배설물에서 옥수수 낱알들을 찾아내 끓여 먹었다, 그리 전해오거늘.

서른 살 벽안의 저널리스트가 홍군 본거지로 찾아들어가 대장정을 비롯한 그 전후 중국 공산혁명 과정을, 그 한 명 한 명 주역들 삶의 역정을, 그들로부터 직접 듣고 또 스스로가 보며 치열하게 기록한 책. 오늘날 사회주의국가 중국 탄생의 건국신화와도 같은 책. “내 전기는 이 책으로 대신한다”고 모택동 본인이 설파한 책. 이 스펙터클한 로드무비 속에서, 세상과 나라를 바꾸려 내쉬었던 그들의 폭풍 같은 숨결을 울컥 부디 느끼옵시길.

윤중목 | 시인·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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