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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10년전 국정원 하던 '패킷감청'…한동훈 유심 압수로 재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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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달 29일 한동훈 검사장과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이 몸으로 부딪힌 모습. 오른쪽은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유심 카드. 삽화=김회룡 기자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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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기자와 현직 검사장 간 유착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한동훈(47·사법연수원 27기) 검사장의 휴대전화 유심(가입자 식별 모듈·USIM) 칩을 압수수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감청 논란이 계속 일고 있다. 대화 내용(콘텐트)보다는 실시간 대화까지 엿들을 수 있는 유심(정보 통로)을 압수하는 건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도 나온다.

3일 법원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진웅)가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발부받은 영장에는 ‘한동훈 검사장 아이디로 기존 비밀번호를 무효화하고, 한 검사장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인증번호를 받아 비밀번호를 바꿔 메신저에 접속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통신(IT) 전문가로 꼽히는 구태언(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유심 카드를 다른 공기계에 꽂는 순간 타인의 통신망을 가로채고 있으니 감청”이라며 “앞으로 유심을 압수하려면 통신 영장에 감청 영장까지 2장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원이 이를 계속 허용하다 보면 수사 기관은 번거로운 통신사 압수수색보다 손쉬운 유심카드 영장으로 개인 정보를 빼가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터넷 회선 오가는 대화 감청한 ‘패킷감청’ 재연 논란



이날 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도 수사팀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법세련은 “압수수색은 이미 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 내용 등 과거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인데 수사팀은 발신자와 수신자가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내용을 수집하는 감청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국가정보원이 북한의 대남공작 지령을 받은 전직 교사를 수사하면서 인터넷 회선으로 오가는 대화 내용을 엿듣는 ‘패킷감청’ 논란을 재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는 패킷감청이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상 보호하고 있는 감청제도에서 법원으로부터 허가된 범위를 넘어 남용될 수 있다며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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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으로 구성된 '공안기구감시네트워크'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가정보원의 '패킷 감청'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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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2010년 1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전직 교사인 김모씨 명의로 가입된 인터넷 전용회선과 인터넷 전화 통화내용을 감청했다. 이후 국정원은 김씨에게 패킷감청 집행 사실을 통보했고, 김씨는 2011년 3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5년간 판단을 내리지 않다가 김씨가 간암으로 사망하자 2016년 2월 심판을 종결했다.

이후 김씨와 같은 사무실에서 인터넷회선을 함께 썼다는 이유로 패킷 감청을 당한 문모 목사가 시민단체와 함께 그해 3월 같은 취지로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이에 통신비밀보호법의 해당 조항 효력을 올해 3월까지만 유지하도록 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유심 압수는 휴대전화 주인이 참여한 대화 엿볼 수 없어 감청 아니다” 의견도



법조계에서는 “당시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패킷감청이 무제한적으로 허용돼 국민 사생활이 침해된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지만 이번 유심 압수 논란 때는 유달리 조용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국회의원이던 2014년 10월 ‘카카오톡·네이버 등 패킷감청’ 현황 자료를 제출받아 “연간 패킷감청의 95%는 국정원에서 수행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유심 압수에 대해 법원은 비밀번호를 수집해 기존의 대화 내용을 파악하는 거라 대법원 판례상으로도 무리가 없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도 “감청은 수신자와 송신자가 대화하는 중간에 수사기관이 실시간으로 엿듣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유심 압수는 수사팀이 비밀번호를 교체한 뒤 휴대전화 주인은 로그인할 수 없는 상태가 돼 감청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김민상·정유진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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