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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백신 만능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정원식의 '천천히 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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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영국 런던에 있는 임페리얼 칼리지 연구소에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한 연구원이 임상시험에 사용할 백신 샘플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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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제약사들이 경쟁적으로 개발 중인 백신 중 일부가 3상 임상시험에 들어가면서 올해 안에 백신이 나오리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백신이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을 회복시켜줄 것이라는 과도한 ‘백신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백신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과도한 기대로 당장 시급한 일상의 방역 노력이 느슨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2일(현지시간) “백신이 개발되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일상이 할리우드 영화처럼 끝날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전문가들은 백신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팬데믹을 제어하기 위해 전 세계에 백신을 공급하는 일부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는 백신은 공공재라는 입장이지만 부자 국가들은 이미 백신 선점에 들어갔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이미 13억회 분량의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했고, 15억회 분량을 추가로 구매하기로 했다. 마크 뮬리건 뉴욕대 백신센터장은 “정부와 제약사들이 백신 공급을 위해 수십억달러를 퍼붓고 있지만 첫 주 또는 첫 달에 모든 사람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세계는 한번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 안전해질 것”이라고 짚었다.

국가가 물량을 확보하더라도 보건의료인력을 비롯해 필수인력부터 접종을 시작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칫 형평성 시비가 벌어질 우려가 있다. 지난 3월 미국에서는 일반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검사를 거부당하는 반면 유명인과 정치인, 프로 운동선수들이 검사를 쉽게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불평등’ 논란이 벌어졌다. 사드 오머 예일대 글로벌 보건연구소장은 “백신과 관련해서도 이런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미국은 준비가 안 됐다”고 말했다.

백신을 맞는다고 해서 곧바로 항체가 생기지 않는다. 충분한 수의 항체가 생기려면 몇주가 걸린다. 대부분 1차 접종을 하고 몇 주가 지난 후 추가 접종까지 마쳐야 충분한 면역이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면역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면역 지속 기간이 짧을 경우 필요한 백신 접종 횟수가 늘어나면서 생산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바이러스 억제는 백신 개발에서 끝나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여러 난관을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소아마비 백신이 대표적이다. 세계 최초의 소아마비 백신은 미국에서 1955년에 개발됐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거리로 달려나가 서로 끌어안고 기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2년 동안 감염자가 80% 줄었으나 발병은 지속됐다. 1955년에는 백신 제조업체의 실수로 백신을 맞은 어린이 4만명이 감염되고 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의 소아마비는 백신 개발 후 24년이 지난 1979년에 종식됐다.

백신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모두가 백신만을 바라보면서 일상의 방역 조치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3일(현지시간) “여러 백신들이 현재 3상 임상시험 단계에 있지만 (바이러스를 끝장낼) 특효약은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수 있다”면서 낙관론을 경계했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지금은 검사, 거리두기, 접촉자 격리 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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