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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슈 레바논 베이루트 대폭발

'종교의 비극'…레바논은 폭발 이전에 이미 썩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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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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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 AFP=뉴스1) 4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항 선착장에 있는 창고에서 대규모 폭발사고가 발생해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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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4일(현지시간) 발생한 대규모 폭발로 최소 78명이 숨지고 4000여명이 다친 가운데 국가적 위기를 겪고 있는 레바논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레바논은 중동의 지중해 동쪽에 위치해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국가다. 이 때문에 폭발이 일어난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 레바논이 어떻게 위기에 빠지게 되었을까.


레바논…국민의 1/3이 빈곤선 아래에서 사는 나라


BBC에 따르면 레바논은 전 세계를 혼란에 몰아넣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부터 휘청이고 있었다.

극심한 경제위기 때문이었다. 레바논 인구의 3분의 1은 빈곤선 아래에서 근근히 살아가며 매일 정전과 식수 부족을 겪고 있다.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실업률은 25%에 달했다. 경제활동인구 4명 중 1명은 직업이 없다는 얘기다.

국가 재정도 문제다. 레바논의 국내 총생산 대비 부채 비율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다.

이 때문에 '레바논 파운드의 실질 가치는 지난 10개월간 약 80% 하락했다. 레바논 화폐인 '레바논 파운드'는 달러화 가치와 연동되는 페그제 화폐(특정국가 통화에 자국통화 환율을 고정시키는 제도)였지만 하락을 막을 순 없었다.

이에 레바논 국민들은 정부가 기본적인 역할조차 하지 못하는 것에 좌절하며 지배층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자국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앞장 서는 대신 개인의 부만 축적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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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AP/뉴시스] 지난 1월 3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북부 나흐르 엘 칼브 마을에서 레베논 병사들이 베이루트와 레바논 북부를 연결하는 주요 고속도로를 막고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를 해산한 후 도로를 개통하는 가운데 한 반정부 시위 여성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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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국민들의 불만은 지난해 10월 반정부 시위로 터져 나왔다. 극심한 경제 위기와 실업난, 부정부패에 대한 불만이 쌓인 가운데 정부가 세수 증대를 위해 왓츠앱 등 온라인 메신저 프로그램 사용에 세금을 부과한 것이 계기였다.

레바논 베이루트 시민 수만여명은 매일 시위를 했다. 곳곳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어져 나라 운영은 사실상 중단됐다. 결국 레바논의 사드 하리리 총리는 시위대의 정권퇴진 요구에 밀려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레바논에서 신임 총리로 임명된 하산 디아브는 정치 안정과 안보가 시급하다며 새 정부를 꾸리기 위해 일하겠다고 말했다. 또 레바논의 외환보유고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외채를 탕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시위는 이어졌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불러 온 '식량 위기'

코로나19 유행은 레바논의 상황을 더욱 극단으로 몰아붙였다. 레바논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3월 중순 봉쇄 조치를 시행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 시스템 취약점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봉쇄 조치로 경기가 더 나빠지자 레바논의 많은 사업체들은 직원들을 내보내거나 임시해고했다. 그러자 암시장에서 레바논 파운드의 가치는 더욱 하락했고, 물가가 치솟아 식량과 생필품을 구매하기가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레바논에는 '식량 위기'가 찾아왔다. 지난 5월, 코로나19 봉쇄 조치가 해제될 무렵 일부 식품 가격은 두 배 가량 상승해 있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많은 레바논 사람들이 이미 육류, 과일 및 채소 구입을 중단했으며 곧 빵조차 얻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종교적 분열, 타락한 정치가 만든 '위기의 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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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AP/뉴시스]6월 30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도로를 봉쇄하기 위해 불을 지른 타이어와 쓰레기통 앞에 두 소년이 서 있다.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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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전문가들은 레바논이 몰락한 이유로 정치적 종파주의와 정치적 부패를 꼽는다. 레바논은 이슬람 수니파 및 시아파, 기독교계 마론파 등 18개 종파가 얽혀있는 '모자이크 국가'이기 때문이다.

레바논은 앞서 종교적 갈등으로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장기 내전을 겪은 바 있다. 내전이 끝난지는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종교적 종파의 지도자들은 후원 시스템 등을 이용해 권력과 영향력을 유지하며 '그들만의 세계'에서 산다.

레바논은 국제투명기구의 2019년 부패인식지수에서 180개 국가 중 137위를 기록했다. BBC는 감시 단체를 인용해 "부패는 레바논 사회 곳곳에 침투되어 있으며, 레바논에서는 정당, 의회, 경찰이 가장 부패한 기관으로 인식된다"고 전했다.

박수현 기자 literature102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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