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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다된 밥을 왜 물로 씻어"···아시아인 '분노' 일으킨 BBC 쌀밥 레시피 [이슈잇슈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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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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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 방송의 요리 코너에서 요리사이자 방송인인 허샤 파텔이 밥 짓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 BBC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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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밥짓기를 두려워해요. 하지만 한 컵의 쌀을 넣으면 두 컵의 물을 넣는다는 규칙만 따르면 돼요. 간단하죠?”

계란볶음밥 요리법을 알려주는 영국 BBC의 짤막한 영상이 서구 아시아계 누리꾼들 사이에서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아시아인들에겐 다소 엉뚱해 보이는 조리법 때문이다.

요리사이자 방송인인 허샤 파텔은 BBC의 요리 코너에서 밥짓는 법을 이렇게 알려준다. 일단 찻잔 한 잔만큼의 쌀을 냄비에 부은 다음 물 두 잔을 넣는다. 이후 팔팔 끓였다가 불을 줄여 10여 분간 뜸을 들인다. 그러고는 냄비 속의 밥을 체(소쿠리)에 붓고, 수돗물로 씻어낸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지난달 8일 말레이시아인 코미디언 나이젤 엔지는 BBC식 밥짓기에 대한 반응을 담은 영상을 만들어, 많은 아시아인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유튜브에서 3주간 889만여 차례 재생될 정도로 인기가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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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로 지은 밥을 체에 부어 물기를 빼 내고 있는 허샤 파텔. | BBC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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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삼촌’이란 캐릭터의 이름으로 올린 이 영상에서 나이젤 엔지는 아시아인에게는 엉성해 보이는 ‘밥짓기’를 하면서도 자신만만한 진행자의 태도를 코믹하게 질타했다. “왜 찻잔으로 물의 양을 쟤지? 손가락을 어디다 둔 거야. 잠깐, 쌀 안 씻어? 어디서 밥짓기를 배운 거야? 백인들의 쿠킹스쿨 이런 데서 배웠어?”

밥을 지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걱정했을 상황이 BBC 화면 속에서 벌어진다. 애초 물이 너무 많았다. 허샤 파텔이 냄비 뚜껑을 열면서 “음 좋아요. 잘 됐네요”라고 만족감을 표하자 로저 삼촌은 말한다. “시청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어. 밥이 너무 질어. 잘 된 거 아니야.”

로저 삼촌을 가장 화나게 한 대목은 다 된 밥을 물로 씻어내는 장면이었다. 진행자가 밥을 체에 거르자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말했다. “오 마이 갓. 뭐하는 거야. 밥의 물기를 빼 내고 있잖아. 밥이 너무 질게 됐으면 그냥 다시 해. 이건 파스타가 아니라고. 뭐? 밥을 체에 받혀서 이번엔 물로 씻어? 이렇게 밥 하는 사람 처음 봤어. 로저 삼촌은 지금 너무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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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인 코미디언 나이젤 엔지가 자신이 만든 캐릭터 ‘로저 삼촌(Uncle Roger)’가 되어, BBC의 요리법 소개 영상에 반응을 하는 모습. 그는 체에 받혀 물에 씻겨지는 밥을 보고 괴로워 한다. | 나이젤 엔지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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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삼촌의 ‘분노’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면서, 많은 아시아인들이 BBC 요리 영상에 말을 보탰다. 대만 출신 작가 제니양은 트위터에서 “이 쌀밥 요리법은 증오 범죄야”라고 농담을 했다. 많은 아시아인들이 BBC가 말하는 대로 밥을 지으면 어떻게 망하는지를 보여주는 영어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BBC식 밥짓기’에 대한 조롱이 격렬해지면서 나이젤 엔지는 ‘진화’에 나섰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는 문제의 BBC 요리 코너 진행자인 허샤 파텔과 함께 영상을 찍어 게시했다. 지난달 25일 트위터 등에 올라온 이 영상에서 두 사람은 협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샤 파텔은 웃으면서 “이 분이 엄청나게 화를 내는 걸 저는 넋을 잃고 바라봤다”면서 BBC가 제시한 레시피를 시연했을 뿐 “밥짓는 법을 안다”고 해명했다. 허샤 파텔은 이 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게시하며 “제 친구들, 저를 싫어하는 분들께 모두 알립니다. 로저 삼촌과 저는 쌀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곧 협업이 시작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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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의 밥짓기 소개 영상을 비꼰 콘텐츠로 큰 인기를 얻은 말레이시아인 코미디언 나이젤 엔지. 그는 해당 방송의 진행자였던 허샤 파텔과 다시 영상을 찍었다. 이 영상에서 두 사람은 ‘협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샤 파텔은 이 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 허샤 파텔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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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아시아인들은 왜 BBC가 알려준 밥짓기 요리법에 격한 반응을 보였을까. 그동안 아시아권 요리 문화와 전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제멋대로 재료만 갖다 쓰고는 ‘아시아 요리’라고 우기는 백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 CNN은 “쌀은 리조또를 만들 때처럼 육수에 천천히 끓일 수도 있고, 이란 식으로 약간 태워 바삭바삭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아시아계 커뮤니티에서 촉발된 이번 논란은 요리법 견해 차이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이번 논란은 ‘누가 어떤 음식을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질문, 즉 음식·인종·문화의 교차점에 관한 광범위한 논쟁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CNN은 그러면서 스타 셰프 고든 램지의 ‘아시안 레스토랑’이 혹독한 비판을 받은 사례 등을 언급했다. 고든 램지 측은 지난해 런던의 부촌에 ‘럭키 캣’이라는 레스토랑을 열었는데 “1930년대 도쿄와 극동의 주점”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면서 “정통 아시안 레스토랑”임을 내세웠다. 하지만 중식도 일식도 한식도 아닌 모호한 음식을 선보이면서 “아시안식”으로 뭉뚱그려놓고는 “정통”이라고 주장한 점을 두고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해 뉴욕에 문을 열었다가 8개월 후 폐업한 ‘럭키 리’의 예도 유사하다. 이 레스토랑은 중국 음식을 선보이는 곳인데도 중국 음식을 폄하하는 듯한 홍보 문구를 내세웠다. “더부룩하지 않고, 기분 나쁘게 끈적끈적하지 않은”, “클린한” 중국 음식을 내놓겠다고 했다가 논란이 됐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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