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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ESC] 쌀도 품종 시대…품종별 소포장·구독·쇼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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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반영한 쌀 편집숍 등장

외래종은 저물고 우리 쌀 품종 속속 출시 중

빠르미·진상미·삼광·해품·해들·예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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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맛집’인 쌀 편집숍 ‘동네정미소’ 전경. 사진 동네정미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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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와 브랜드 중심이었던 쌀 시장. 최근 새롭게 이름을 알리는 국산 신품종이 늘었다. 도정 후 쌀 맛이 변하지 않는 2주 소비용으로 소포장 판매하는 편집숍 개념의 쌀가게도 여럿이다. 쌀 품종을 살피고 쌀가게도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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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사러 가세

쌀 구입도 취향을 기준 삼아 고르는 소비가 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한 쌀 편집숍도 하나둘 문 여는 중이다. 지난달 29일 수원 광교의 ‘동네정미소’를 찾았다. 매장 앞에 쌀알을 담은 작은 종지엔 ‘참새밥’이라 쓴 깜찍한 메모가 놓여있었다. 진짜 참새들이 날아든다. “여기가 참새 맛집이다.” 공동대표 김동규씨의 웃음기 어린 가게 소개다.

현재 지역 대표 쌀 품종으로는 강원도 철원의 오대, 전라도와 경상북도의 신동진, 경기도의 고시히카리와 아키바레, 충청남도의 삼광벼 등이 있다. 밥쌀용으로 국내에서 개발한 품종이 대략 200여종. 농민들이 주로 재배하는 품종은 정부보급종(2020년 24종)과 공공비축미로 매입하는 품종, ‘밀키퀸’과 ‘용의 눈동자’ 등 수입 벼 종자다. 민간이 개발해 종자를 공급하는 품종으로 누룽지 향이 독특한 향미 ‘골든퀸3호’나 진상미 등이 있다.

동네정미소에서 취급하는 쌀 품종은 대략 전국 각지의 쌀 15종이다. 여기에 토종 벼 종자를 복원하는 우보농장의 토종 쌀도 있다. 주문 즉시 바로 도정을 하고 포장해 직접 배달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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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정미소 공동대표 김동규씨.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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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쌀 정기구독 서비스인 ‘정미식구’와 동네정미소가 큐레이팅한 소포장 세트 ‘정미오미’는 이곳의 대표 상품이다. “커피 전문점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커피 품종에 관심 갖게 된 것처럼, 쌀도 폭넓게 취급하는 곳이 늘어야 소비자의 쌀 취향도 다양해지면서 찾게 되는 것 같다. 쌀은 이제 시작이라고 본다.” 김동규씨는 집에서 밥을 짓는 횟수가 주는 만큼 외식에서 먹는 쌀의 중요성도 짚었다. “식당들은 식자재 유통업체 통해서 쌀을 받는데, 최근에는 설렁탕에 말아 먹을 때 어울리는 쌀 품종이 뭔지, 흑돼지 식당에 어떤 쌀이 좋을지 고민하는 주인들이 생겨나고 있다. 먹는 이도 그런 고민이 담긴 밥을 접하면 얼마나 즐겁고 신뢰감이 가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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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정미소 앞 ‘참새밥’ 종지.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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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품종이라도 어느 땅에서 자라는지, 비료를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는 게 쌀이다. 쌀 취향이 확고한 이들은 품종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 농협의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나온 쌀인지도 살핀다. 계약 재배 등으로 품질을 관리한 쌀을 먹을 수 있다는 이유다. 농부와 직거래를 하는 방법도 있다. 혼합쌀보다 단일품종 쌀의 품질이 일정하듯, 한 농부의 쌀, 이를테면 단일농부의 쌀을 고르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20㎏, 10㎏ 등 큰 포대가 일반적이라서 1인 가구 등의 입장에선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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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공동대표가 큐레이팅한 백미 4종과 현미 1종을 담은 소포장 팩 ‘정미오미’ 세트는 쌀 취향 찾으려는 소비자에게 인기가 많다. 사진 동네정미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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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곡 쌀 상회 ‘매일의 아침’은 농부 김주형씨가 직접 농사를 지은 삼광 품종을 취급한다. 다른 논의 쌀이 섞이지 않도록 나락 상태로 저온 보관하는 창고를 두고 주문받은 다음 날 아침 도정을 해서 배송한다. 원하는 날짜에 3㎏씩 정기배송을 하고, 따로 1㎏씩 구매도 할 수 있다.

쌀 생산자에 그쳤던 농민이 쌀의 보관, 도정, 유통까지 한 곳에서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품질과 신선도를 담보하고 세련된 소포장으로 마케팅까지 해냈다. “단골 비율이 높다. 소비자에게 직접 평가를 받고 반응을 알 수 있으니 보람도 크다. 농사를 아무리 잘 지어도 소비자에게 닿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패키지도 많은 공을 들이고, 쌀 공방 쇼룸도 만들었다.” 김주형씨는 생산자가 브랜딩을 하고 판매하는 사례가 좀 더 늘기를 바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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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농업기술원이 개발한 극조생종 벼 ‘빠르미’. 사진 충남 농업기술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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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이름을 불러줘

“최고의 쌀을 겨루자! 승자는 패자에게 쌀 한 가마니를 선물하고 패자는 그 쌀로 밥을 지어 먹도록!” 글귀 아래 ‘대왕님표 여주쌀’과 ‘임금님표 이천쌀’ 포대가 나란히 놓였다. K4리그(한국 축구 4부 리그에 해당하는 세미프로 축구대회) 여주 시민축구단과 이천 시민축구단의 경기를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그라운드에서 대왕님과 임금님이 맞붙은 ‘쌀 더비(연고지가 같은 두 팀의 라이벌 경기)’다.

경기도에서 재배하는 쌀을 통칭해 경기미라 한다. 강원도 ‘철원 오대쌀’과 함께 품질이 좋은 고급 쌀이라는 인식이 있다. 경기도에서도 여주시와 이천시는 쌀 생산지로 자부심이 대단해서 1990년대부터 해마다 어느 쪽이 먼저 전국에서 처음 벼 베기를 하는지 신경전을 벌여왔다. 올해 첫 벼 베기 행사는 6월26일 여주시에서 있었다. 이날 수확한 품종은 극조생종인 ‘진부올벼’다. 2016년 다른 지역에서 모내기를 시작할 즈음인 5월11일에 이천에서 일찌감치 전국 첫 벼 베기 타이틀을 가져갔다. 2004년 8월3일에는 두 지역이 30분 차이로 전국 첫 벼 베기 행사를 벌인 바 있다. 조선 왕실에 진상미를 올리던 지역의 내력을 브랜드로 삼아 인지도를 높이고 첫 수확을 알리는 홍보 효과를 노리는 경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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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 농부가 직접 기른 쌀 품종 ‘삼광’을 바로 도정해 판매하는 ‘매일의 아침’. 사진 김주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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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빨리 수확할 수 있는 벼 품종은 무엇일까? 진부올벼보다 생육 기간이 열흘 짧은 품종으로 ‘빠르미’가 있다. 빠르미를 개발한 충남도농업기술원은 지난달 30일 ‘더빠르미’를 선보였다. 빠르미보다 나흘 일찍 모내기하는데, 평균 76일이면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생육 기간을 단축하면 농업용수와 비료를 덜 쓰고, 장마나 태풍, 가뭄, 폭염 등을 피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내년 ‘쌀 더비’에서 이기기 위해 더빠르미를 심으면 어떨까? 우선 이천은 속도 경쟁에서 물러난 모양새다. 지난해부터 이천의 첫 벼 베기 행사는 지역 특화품종으로 육성하는 조생종 ‘해들’을 알리는 것으로 바뀌었고 지난달 24일에 첫 수확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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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아침’은 소포장한 쌀을 판매한다. 사진 김주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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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전체 쌀 생산에서 63%(2018년 기준)를 차지하던 일본 도입종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국산품종으로 대체되는 중이다. 2015년 포털사이트 질문 글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쌀만큼은 임금님처럼 먹으라고 광고하던데 어떤 임금부터 일본 품종인 아키바레를 잡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임금님께서 혹시 고시히카리는 안 드셨는지도 궁금하네요.’ 포장은 임금님표인데 품종은 아키바레(추청), 고시히카리, 히토메보레인 아이러니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제 이천의 임금님은 ‘해들’. 여주의 대왕님은 ‘진상미’ 품종을 주로 잡수신다. 경기도는 일본어 품종이 표기된 브랜드 유통으로 경기미 이미지가 하락할 것을 우려해 경기도 농기원이 개발한 신품종 ‘참드림’ ‘맛드림’ ‘가와지1호’를 유통할 요량으로 재배단지도 조성했다. 특히 참드림은 우리 토종 벼인 ‘조정도’를 신품종 육종에 이용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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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아침’ 소포장 팩. 사진 김주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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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바레가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1969년, 고시히카리와 히토메보레는 2002년이다. 농촌진흥청이나 지자체가 주관했던 우수 브랜드 쌀에 선정되며 밥맛이 좋다는 인식이 굳어진 품종을 별안간 왜 퇴출하는 것일까?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삼광’ ‘영호진미’ ‘하이아미’ ‘해품’ ‘해담쌀’ ‘현품’ ‘진수미’ ‘예찬’ ‘해들’ 등 최고품질 쌀(현 18종)을 개발하고 보급해왔다. 밥맛을 평가하는 테스트에서 고시히카리를 제친 국산 품종이 다수다. 외래종 벼가 병해충에 약하고 비바람에 쓰러지는 등의 문제가 있어 대체 품종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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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아침’ 쌀 품종 ‘삼광’을 도정하기 전 나락. 사진 김주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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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아침’ 쌀 품종 ‘삼광’을 도정한 뒤 백미. 사진 김주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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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브랜드 쌀 경쟁이 일본 품종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경향도 한일 무역 갈등이 일본산 불매운동으로 번진 지난해를 기점으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경기미가 적극적으로 벼 품종 전환에 나서자 전라남도 해남군은 2025년까지 외래품종 벼를 퇴출한다는 결의대회까지 열었다. 2023년부터 정부가 보급하는 볍씨 품목엔 고시히카리와 아키바레가 빠진다. 쌀 생산지마다 지역에 적합한 국산 벼 종자 보급이 한창이다. 곧 낯선 품종의 ‘신상’ 쌀이 소비자를 찾는다. 산지와 브랜드를 기억하던 쌀. 품종명을 눈여겨볼 차례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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