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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설왕설래] 원피스 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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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의 양포가 흰옷을 입고 외출한 뒤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귀가했다. 그러자 집에서 기르던 개가 심하게 짖어댔다. 양포가 “이놈, 주인도 못 알아보느냐”며 때리려 하자 형인 양주가 말했다. “사람도 저 개와 다를 게 없다. 다들 겉이 달라지면 속도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한비자’에 나오는 양포지구(楊布之狗) 고사다.

실제로 그렇다.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부통령 때 볼티모어의 한 호텔에 투숙하려 했다. 호텔 주인은 그의 허름한 옷차림을 보더니 빈방이 없다고 거절했다. 제퍼슨이 나간 뒤 얼마쯤 지나 누군가가 주인에게 “당신이 방금 부통령을 내쫓았다”고 일렀다. 당황한 주인은 호텔 직원을 총동원해 부통령을 찾아낸 후 방을 마음껏 쓰시라고 했다. 제퍼슨이 말했다. “당신네 호텔에 허름한 옷차림의 농부를 재워줄 방이 없다면 부통령을 위한 방도 없을 것이오.”

삼성이 스마트폰 혁신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놓친 것은 옷을 비롯한 외관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있다.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디 루빈이 2004년 운영체제를 팔기 위해 삼성전자를 찾았다. 본부장이 회의장 안으로 들어오자 청색 정장 차림의 간부 20명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루빈 일행의 프레젠테이션을 지켜본 본부장은 웃음 띤 얼굴로 자랑을 늘어놓았다. “당신 회사는 8명이 일하는군요. 우리는 그 분야에서 일하는 인력이 2000명이나 됩니다.” 협상은 거기서 멈췄다. 1년 후 안드로이드는 헐값에 구글로 넘어갔고, 삼성은 굴러온 복을 걷어찼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루빈 일행은 후줄근한 청바지 차림이었다.

뜬금없이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옷차림이 도마에 올랐다. 그녀가 분홍색 계열의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하자 성희롱 글이 온라인에 쏟아졌다. 일부 네티즌들은 “룸살롱 새끼 마담”, “노래방 도우미 같다”고 조롱했다. 류 의원은 “국회의 권위는 양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할 때 세워진다”며 어제는 청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맞는 말이다. 입법부의 권위를 추락시킨 주범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통법부로 전락한 그 자신이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야 한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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