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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마른 수건 짜내는 심정” 7개월째 자구책 마련 고심하는 항공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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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증자·차입 등 자금 마련 나섰지만 상황 여의치 않아
글로벌 항공기 제조업체, 잇단 감산 발표

코로나 사태로 항공 여객 수가 97% 이상 감소하면서 곳간이 바닥난 항공사들이 자산 매각을 비롯해 유상증자와 무급 휴직 등 자구안을 짜내고 있다. 그마저 업황이 극도로 악화한 탓에 투자자를 찾지 못하고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항공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전 세계 최대 규모의 항공기 제조업체들 역시 앞으로 최소 2년 일제히 생산을 줄이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항공 업황이 장기간 침체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한 대한항공(003490)은 미국 LA윌셔그랜드센터를 담보로 자금 조달에 나섰다. 대한항공의 100% 자회사인 한진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이 소유하고 있는 월셔센터는 그간 매각설이 꾸준히 제기됐으나 코로나 여파에 예상 매각 금액이 크게 낮아지면서 재융자(리파이낸싱) 대상이 됐다. 국내 기관투자가로부터 기존 대출보다 더 많은 금액을 조달한 뒤 기존 담보대출을 갚고, 남은 돈을 운영자금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윌셔센터의 가치가 약 1조4000억원에 달해 리파이낸싱으로 2500억원 가량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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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에 주기된 여객기들.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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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대한항공은 사모펀드와 기내식·기내면세품판매사업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각 사업부의 매각 금액이 1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와 왕산레저개발 지분, 제주 파라다이스 호텔 용지 매각 작업도 진행 중이다. 또 하와이 와이키키 리조트호텔, 제주 KAL호텔, 서귀포 KAL호텔 등도 매각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저비용항공사(LCC) 업계 1위인 제주항공은 보유 엔진을 매각한 뒤 리스로 임차하는 형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당초 계획했던 새 기종 도입 시기도 무기한 미루고 있다. 제주항공(089590)은 내년까지 여객기를 새로 들일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로 유휴 여객기가 많아 당장 여객기 도입 계획이 없다"며 "내후년 737맥스를 구입하기로 계약돼 있지만 작년 추락사고로 이 또한 잠정 연기된 상태"라고 말했다.

에어부산(298690)은 올 하반기 A321 NEO LR 1대를 추가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 여파로 경영 여건이 악화하자 리스사에 도입 시기를 늦춰달라고 요청했다. 에어부산 관계자는 "요즘 같은 상황에 신규 항공기 도입이 부담스럽지 않은 항공사는 없을 것"이라며 "항공기 제조 업체들도 감산을 결정한 만큼 인수 시기나 비용 지급 날짜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협의 중"이라고 했다.

자산 매각 외에도 항공사들은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나섰으나 흥행에 실패하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국내 항공사 9곳 중 6곳이 유상증자에 나섰는데, 일부 LCC는 기대만큼 현금을 확보하지 못했다. 티웨이항공(091810)은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했지만, 청약 참여율이 저조해 자금 수혈에 실패했다. 티웨이항공 측은 "극심한 불황에 최대 주주의 참여가 극히 적었다"고 말했다. 플라이강원도 3자 배정 유상증자를 위해 기업 투자자를 섭외하고 있으나 선뜻 나서는 곳이 없는 상황이다. 플라이강원 관계자는 "자금 확보를 위해 3개월여 전부터 유상증자를 추진했지만 업계 전체가 불황이다 보니 계획대로 잘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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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왼쪽)과 에어버스(오른쪽).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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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 중인 제주항공은 당초 예정된 유증 일정을 두 차례 미루고 운영자금 마련 목적으로 단기차입금 500억원을 늘리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제주항공의 유상증자 역시 흥행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하며 부담을 다소 덜었지만, 올 2분기 847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재무상황은 악화일로다. 현금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알려진 진에어(272450)도 결국 1092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섰다.

항공기 제조업체들 역시 생산량을 줄이며 장기화하는 항공업계 불황에 대비하고 있다. 미국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은 지난달 2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대표 항공기였던 747 점보기를 오는 2022년을 끝으로 생산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또 월 10대씩 생산하며 보잉의 이익률 개선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787 드림라이너 항공기를 2022년까지 월 6대로 감산하고 신형기종인 777X 출시 일정도 2년 늦추기로 했다.

보잉과 쌍벽을 이루는 유럽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도 감산에 동참했다. 에어버스 측은 보잉의 실적 발표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실적을 내놓으며 A350 기종 생산 계획을 월 5대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 이 기종 생산 계획을 월 9대에서 6대로 줄인 데 이은 추가 감산이다. 기욤 포리 에어버스 CEO는 "글로벌 항공 수요가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시점은 2023~2025년 사이가 될 것"이라며 "사정이 더 나빠질 수 있기에 추가 감산 여부를 계속 검토하겠다"고 했다.

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정민하 기자(mi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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