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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쿵” 소리 후 집채만한 토사 밀려와… 산사태 피해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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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하루 55건… 16개 시·도 위기경보 ‘심각’ 단계 발령

곡성·담양·장수 등 주택 매몰 잇따라

이장 부부 등 호남서 이틀간 9명 참변

세계일보

순식간에… 지난 8일 오후 폭우로 전남 곡성군 오산면에서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토사가 마을을 집어삼키듯 덮쳐 일부 주택이 흙더미에 묻혀 있다. 이 사고로 5명이 목숨을 잃었다. 곡성=뉴스1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지더니 쾅쾅 하면서 뒷산이 와르르 무너졌어요.”

9일 오전 10시 전남 곡성군 오산면 성덕마을은 산사태가 나면서 밀려온 토사가 동네를 뒤덮고 있었다. 매몰된 주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차량은 산사태 충격으로 구겨졌다. 평온한 동네가 처참한 상태로 남아 있어 주민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긴 장마로 산사태 위험이 컸지만 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날 오산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에는 산사태가 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주민 20명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아있다. 이틀 전 대피소에 함께 있던 마을주민 30여명은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나자 침수된 집의 가재도구라도 챙기기 위해 서둘러 귀가했다.

대피소의 주민들은 이틀 전 산사태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모씨는 “아직도 우르르 쾅쾅하면서 토사가 흘러내리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자다가도 문득 문득 깨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오산면 성덕마을에 산사태가 난 것은 지난 7일 오후 8시30분쯤. 이날 하루 동안 278㎜의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마을 뒷산의 토사가 200m가량 떨어진 마을을 덮쳤다. 순식간에 주택 5채가 토사에 파묻혀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다. 저녁 식사 후 집에서 TV를 보던 마을 주민 5명이 참변을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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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가 9일 오후 전남 곡성군 오산면 성덕마을에서 산사태 피해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뉴스1


마을주민 주모씨는 “쿵 하는 천둥소리가 나 밖을 보니 집채만 한 토사가 밀려와 개울 너머에 있는 주택들이 순식간에 매몰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산사태와 함께 정전이 되면서 마을은 암흑으로 변했다. 마을주민들은 산사태가 나자 곧바로 오산초등학교로 대피해 밤을 새웠다.

소방대원들은 주택 3채에서 구조작업을 벌여 김모(71·여)씨와 윤모(53)씨, 이모(60·여)씨를 구조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다음날 구조를 재개해 강모(73)씨와 이모(73·여)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마을주민들은 7년 전 귀농한 이장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이장인 윤씨는 평소 마을 일에 발벗고 나서 올해 초 주민 추천으로 이장에 선출됐다. 강씨 부부도 3년 전 이 마을로 귀촌해 터를 잡고 주민들과 잘 어울렸다. 마을주민 박모씨는 “귀농 후 이장으로 성실히 마을 일을 도왔는데, 사고가 나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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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전남 담양 무정면 봉안리 마을에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주택과 차량 등이 매몰돼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전남 담양에서도 산사태로 주택이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8일 오전 6시25분쯤 담양군 금성면에서 산사태로 주택 한 채가 매몰돼 70대 여성이 숨졌다. 이에 앞선 오전 4시 30분쯤에는 담양군 무정면의 한 주택이 산사태로 무너지자 8세 남자 아이가 대피소로 이동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숨진 채 발견됐다.

전북 장수에서는 산사태로 매몰된 주택에서 50대 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장수군 번암면 한 야산에서 산사태가 난 것은 지난 8일 오후 4시쯤. 산사태로 매몰된 주택은 20m가량 아래로 쓸려내려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됐다. 소방당국이 야간 수색 작업을 벌여 50대 부부의 시신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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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전북 장수군 번암면 한 마을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주택 1채가 토사에 휩쓸려 주택 안에 있던 권모씨(59)와 그의 아내가 숨졌다. 9일 방문한 사고 현장에는 오후 주택 잔해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뉴스1


광주와 전남·북에서 지난 7, 8일 이틀간 산사태로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산림청 산사태예방지원본부는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한 집중호우로 8일에만 총 55건, 8월 들어 667건의 산사태가 발생했다고 이날 밝혔다.

올해 장마는 강수량이 많아 산사태 위험이 컸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가평과 평택, 제천 등 전국 곳곳에서 산사태로 인한 매몰사고로 귀중한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산림청은 전국 16개 시도(제주도 제외)에 산사태 위기 경보 최고 단계인 ‘심각’을 발령한 상태다. 산림청은 전국적 집중호우에 대비해 산사태 취약지역 등에 대한 긴급점검을 지속해서 벌이고 있다. 산사태 취약지역 7722곳을 긴급점검하고, 주민피해 우려 임도 시설 873곳, 숲 가꾸기 사업장 180곳, 태양광시설 1823곳을 점검했다. 피해 우려 지역 주민 1316명(귀가 415명)을 긴급 대피시켰다.

곡성=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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