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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이재민 800명 넘고서야… 정부, 위기경보 최고 단계 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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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최악 피해 왜

9일째 이어진 집중호우에

사망자 30명·실종자 12명

8년간 사망자의 2배 이상

세계일보

곡성 산사태 현장 찾은 丁 총리 정세균 국무총리(왼쪽 두 번째)가 9일 전남 곡성군 오산면 산사태 현장에서 피해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곡성=연합뉴스


올해 장마 기간 동안 발생한 사망·실종자가 최근 8년 동안 발생한 집중호우 관련 사망자의 2배가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장마가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계속 나오면서 큰 피해가 예상됐음에도 정부가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몇몇 인명 사고는 대처만 제대로 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라는 지적이다.

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6월24일 중부지방에서 장마가 시작된 이후 이날 오전 10시30분까지 발생한 집중호우 관련 사망자는 38명, 실종자는 12명이다. 지난해 인명피해(17명)의 3배 수준으로, 2011년(78명) 이후 9년 만에 최악의 물난리다. 인명피해는 특히 이달 들어 많이 발생했다. 1일부터 이날까지 집중호우로 인한 사망자는 30명, 실종자는 12명이다. 태풍을 뺀 집중호우 사망자만 놓고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8년간(2012∼2019년) 집중호우로 인한 사망자는 19명이었다. 이달 들어 9일여간 발생한 사망·실종자가 최근 8년 동안의 사망자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이다.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 태풍이 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인명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

최근 인명피해가 집중된 것은 짧은 시간 동안 강한 비가 쏟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마가 오래 지속된 영향도 크다. 중부지방의 경우 장마가 가장 길었던 해는 2013년 49일이고, 장마가 가장 늦게 끝난 해는 1987년 8월 10일이다. 올해에는 6월24일 시작된 장마가 이날까지 47일째 계속 되고 있어서 장마 기간과 종료 시기 모두 기록을 새로 쓸 것으로 보인다. 행안부 관계자는 “예년 장마 때는 비가 소강상태를 보이는 동안 땅이 굳을 수 있었는데 올해는 거의 쉬지 않고 내리면서 지반이 계속 약해졌다”며 “급경사지는 물론 얕은 야산에서도 토사가 쓸려내려 주택을 덮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많은 사고에 ‘인재’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폭우가 내리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이미 한 달 넘게 장마가 이어지던 상황이었던 만큼 이 같은 피해가 어느 정도 예상됐다는 것이다. 집중호우에 미리 대비했더라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2일 호우 비상대응 수위를 최고 수위인 3단계로 높였고, 3일 오후 6시에는 풍수해 위기경보도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올렸다. 행안부는 “최고 단계는 시도 단위의 호우경보 발령상황 등을 기준으로 운영하는데 이번에는 발령기준에 도달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비상단계를 발령해 대응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때는 이미 1일부터 사흘간 20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하고, 이재민도 800명 넘게 나온 시점이었다.

올해 침수된 지역이 대부분 상습 침수 구역이라는 점도 정부 대응이 안일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달 23일 부산 초량 제1지하차도가 침수돼 3명이 숨진 사고가 대표적이다. 부산에서는 2014년에도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가 침수돼 2명이 숨졌다. 판박이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부산시의 조사 결과 부산의 지하차도 48곳 중 29곳이 침수 우려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진영 행안부 장관은 이날 “부산 지하차도 침수사고를 계기로 이 같은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중앙과 지방, 민과 관이 힘을 모아야 한다”며 지하차도 차단시설을 자동화하는 등 침수사고 예방 대책을 마련해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4년 사고 이후에도 호우 경보 시 지하차도 통행을 통제해야 한다는 침수 대비 매뉴얼이 마련됐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던 만큼 정부와 지자체의 안전불감증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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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부산역 인근 초량 제1 지하차도에 119구조대원들이 배수 작업과 구조작업에 들어간 모습.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최근 수해 피해를 본 지역 주민들도 정부의 대처를 꼬집었다. 강원 철원에서 수해 피해를 본 한 농민은 “30년 넘게 농사를 지으면서 물난리를 다섯 번째 당했다”며 “지자체는 대책을 내놓기보다 하늘 탓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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