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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전월세전환율 어겨도 처벌 규정 없어… “집 주인이 부르는게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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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 부동산 대책 한 달

휴가철 비수기 불구 이사철 수준… 전세 나오면 집도 안보고 계약금

가족을 실거주로 등록 집 비워놔… 집 찾는 세입자만 피해보는 구조

세계일보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전셋값 폭등 및 전세 품귀 현상으로 비어있다. 연합뉴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A씨는 연말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그는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지난 주말 마포구와 서대문구 부동산중개업소 수십 군데를 들렀지만, 마땅한 전세매물을 구하지 못했다. 이러다가 신혼집을 구하지 못할까 걱정을 달고 살고 있다. 이달 중순 여름휴가 때는 예비신부와의 여행을 포기하고 아예 일주일 내내 전셋집을 찾아다닐 작정이다. A씨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집값이 너무 올라 구매는 포기했는데, 잠깐 결정을 못 한 사이에 전세가격도 오르고 매물도 자취를 감췄다”며 “직장 근처에서는 도저히 집을 찾기 어려워 서울 외곽과 경기도 지역까지 모두 다녀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9일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전·월세 물량이 급속히 줄고,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7·10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매매 시장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개정 임대차법 시행과 맞물려 전세 시장은 순식간에 위축된 형국이다.

7·10 대책으로 다주택자의 세 부담이 증가하면서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고, 3기 신도기 대기 수요와 각종 규제 여파로 전세에 눌러앉는 세입자까지 증가하면서 전세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서울 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전세 물량이 ‘제로(0)’인 단지도 속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마포구 용강동 래미안마포리버웰(전용면적 85㎡)의 경우 지난달 7일 8억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가 2주 만에 9000만원이 올랐다. 인근 중개업소에 따르면, 최근엔 호가 10억원에 올라온 매물도 곧바로 가계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포구 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가 나오면 집을 보지도 않고, 바로 계약금부터 입금하겠다는 사람이 꽤 있다”며 “휴가철 비수기인데도 전세 문의가 이사철 수준 이상으로 많이 오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여당이 전세의 월세 전환 가속화를 막기 위해 전월세전환율 규제를 강화한다는 방침이지만,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자금 여력이 있는 일부 집주인들은 보증금을 대폭 줄이고, 월세를 높이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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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의 B아파트 단지(전용면적 84㎡)는 보증금 4억원에 월세 250만원에 올라왔는데,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전월세전환율을 적용한 전세금은 11억5000만원이다. 지난달 8억∼9억원에 거래됐던 전세 시세보다 훨씬 높지만, 전세 매물이 부족하다 보니 급하게 집을 찾는 수요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월세 시세를 올려놓으면, 나중에 전월세전환율 기준에 따라 전세 보증금을 정해도 전세가격을 띄울 수 있다. 또 법정 전월세전환율은 기존 계약 기간 중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만 적용될 뿐, 신규 계약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서 현행 4%의 법정 전환율보다 높은 금액의 월세를 요구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여권이 법정 전월세전환율을 지키지 않은 집주인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현재는 사인 간 거래 시 참고 조항으로서의 성격이 짙기 때문에 별도의 처벌 규정이 없다. 높은 월세를 요구하는 집주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긴 하지만, 세입자 입장에서 요새처럼 매물이 부족할 때는 섣불리 집주인과 맞서기 쉽지 않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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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일대에서 부동산악법저지 국민행동 회원들이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뉴시스


서울 강남역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자금 여력이 있는 집주인들은 세입자한테 높은 가격을 불렀다가 거절당하면, 본인이나 가족이 실거주하는 것으로 등록해놓고 집을 비워놓을 계획까지 세운다”면서 “결국 당장 살 집이 급한 세입자만 피해보는 구조가 됐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등록임대 사업자에게 모든 주택의 임대 보증금 보증 가입을 의무화한 게 다세대주택 등에선 전세의 월세 전환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는 최근 등록임대에 대한 세제를 보완하면서 폐지 대상인 등록임대를 임대의무기간의 절반만 채운 후 등록말소해도 세제 혜택을 유지하기로 했다. 다주택자의 주택 매각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중간에 등록임대에서 나와야 할 세입자도 많이 생길 수 있다. 폐지 대상인 8년 아파트 매입임대의 경우 세입자가 입주한 뒤 한번 계약을 갱신해 4년을 채웠다면 집주인이 세제 혜택을 지킬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집주인은 필요에 따라 이 집을 등록말소하고 팔아버릴 수 있게 된다. 등록임대는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고 5% 이상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세입자들이 비싼 임대료를 감안하고 계약한 사례가 많다. 등록임대 세입자들은 웃돈을 주고 계약했지만 약속받은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다른 전월세를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게 된 셈이다. 새로운 집주인도 임대를 계속하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수 있긴 하지만 새 집주인이 실거주를 목적으로 입주할 경우 세입자는 다른 집을 찾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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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시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모습. 뉴스1


요동치는 전세시장과 달리, 주택 매매시장은 상승폭이 둔화하면서 일단 관망세로 돌아서고 있다. 한국감정원 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7·10 대책 직전인 지난달 6일 0.11% 올랐다가 지난주(0.04%)까지 3주 연속 오름폭이 줄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가을 이사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임대차 3법 영향 등으로 전세가 귀해졌고, 정부가 내놓은 공급 대책으로 청약 대기 수요까지 누적되면 전세 불안이 더 심화될 수 있다”며 “전세 물량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퇴로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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