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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친절한 IB씨] 사모펀드는 ‘마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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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임, 옵티머스 그리고 MBK파트너스

[편집자주]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Makers and Takers)라는 책이 있다. 우리 말로 풀어쓰자면 제조업은 ‘(가치를)만드는 자’, 금융은 이 가치를 ‘뺏는 자’ 정도가 된다. 이 말엔 가치 판단이 녹아 있다. 자본주의 태동 이전부터 금융은 늘 뺏는 자로 그려져 왔다. 1598년에 출판된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수전노로 그려진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금융 없이 굴러가지 않는다. 은행의 자금 중개 기능이 없다면 설비투자가 필요한 제조업도, 쓰는 돈과 버는 돈의 시차가 있는 다른 기업도 존재할 수 없다. 물론 금융이 2008년처럼 위기의 진원지가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지렛대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얼마나 알고 통제하느냐에 따라 악이 되기도 하고, 선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친절한 IB씨’는 금융의 첨두(尖頭)라 할 수 있는 투자업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획한 코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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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설명보다 그나마 알기 쉽게 사례 소개 하나. 얼마 전 가정을 꾸린 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대표의 억울한 사연이다. 그는 일찍이 PEF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 대기업이니 정규직이니 하는 친구들과 달리 갓 서른 즈음 본인의 전 재산을 건 승부수를 띄웠던 것도 이 때문.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번듯한 투자 성공실적 하나 없는 그에게 돈을 맡길 이를 찾기 힘들었다. (PEF는 본인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출자자가 없인 투자할 수가 없다.) 돈 될만한 투자 건을 찾아 상해 바닥을 눈물로 헤매던 시절도 있었다. 그게 뼈아픈 실패로 이어지기도 했다. 동업자들과의 불화로 갈라선 뒤 홀로 파고를 헤쳐나온 게 4년여. 우여곡절과 실패가 중첩했던 그의 청춘은 누구보다 치열했다. 그런 고생 끝에 최근 한 중견기업이 내놓은 자회사 인수에 성공했다. 그렇게 이제 막 그가 꾸린 PEF 본궤도에 올렸는데, 엉뚱한 곳에서 비수가 날아왔다.

최근 처가도, 와이프의 친구도, 주변인들도 그의 앞에선 걱정을 한가득 늘어놓는다. 라임이니 옵티머스니 정치권을 휘젓는 게이트로 비화하고 있는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와 도매금으로 묶였다. 대한민국을 보수와 진보로 찢어놓은 조국 사태의 출발도 개인투자자의 돈을 굴리는 코링크PE라는 ‘영세’ PEF였다. (통상 PEF는 개인투자자가 아닌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로부터 출자를 받는다.) 어렵게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사기꾼이라니. 억울해 죽겠다는 게 그의 말이다.

물론 그도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입을 분주히 놀렸다. “같은 사모펀드가 아니다. 다르다.” 하지만 아무리 설명을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의 말을 간략히,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양념을 보태 축약해 보면 이렇다. (그래도 당신이 이해하긴 쉽지 않다는 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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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반면 헤지펀드는 주식이나 채권뿐만 아니라, 같은 메자닌(Mezzanine) 등 돈이 되는 상품은 가리지 않는다. 단기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투자한 뒤 수익이 난다 싶으면 팔아 이문을 남긴다. 고위험(리스크)를 감수하지만 여러 방법의 대비책(hedge)을 마련해 둔다. 저평가된 주식은 매수(long position)하고, 고평가된 주식은 매도(short position)하는 롱-쇼트 투자기법 등을 쓰는 곳이 바로 헤지펀드다. 막대한 돈과 기발한 투자 기법으로 1992년 영국 파운드화를 투매해 영국이 유럽통화제도를 탈퇴하게 만든 것도, 1997년 태국 바트화를 공격해 한국의 외환위기를 초래한 것도 바로 이 헤지펀드다. 이런 과거 탓에 ‘자본주의의 악마’로도 불린다. (넷플릭스에서 유명한 ‘빌리언스(billions)’라는 미국 드라마는 이 헤지펀드 대표와 뉴욕 연방 검사장의 쫓고 쫓기는 게임을 다루고 있다. 헤지펀드를 보다 쉽게, 그리고 즐겁(?)게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겐 단비 같은 콘텐츠다.)

투기꾼에 가까운 탓에 헤지펀드가 기업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헤지펀드가 특정 기업의 주식을 설령 51% 들고 있더라도, 경영권을 행사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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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여의도(공교롭게도 국회가 한 땅 위에 서 있다.)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라임과 옵티머스는 헤지펀드다. 우리나라에선 꽤 많은 헤지펀드가 자산운용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속지 마시라.

구분에 성공하기까진 꽤 많은, 복잡한, 그리고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아! 물론 라임과 옵티머스의 대표는 기발한 투자기법을 통해 수많은 피해자를 만든 게 아니다. 그냥 개인 투자자들의 돈을 빼돌린 사기를 사모펀드라는 수단을 활용해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뿐. 영국 파운드화를 공격한 ‘퀀트(Quant)’ 펀드로 대성공을 거둔 조지 소로스 등에게 탐욕스럽다고 손가락질을 할 순 있을지언정, 쇠고랑을 채울 순 없다.



국내선 같은 이름 붙었다고 '동종' 취급... 이제는 구분해야

이런 어렵고도 어려운 설명들을 내놓고 나면 십중팔구 상대방의 표정은 대략 “무슨 소리지?”라는 반응. (이 영역에서 처음 취재를 시작했던 2018년 사모펀드 발전방향이라는 공청회에서 기자가 느꼈던 당혹감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이때부터는 그도 포기다. 더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토종 모험자본 육성이라는 지난 20년간 금융정책의 유일한 성공 사례지만(국내 사모펀드의 산파라 할 수 있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사석에서 “PEF 안 만들었으면 어쩔 뻔했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제는 금융시장의 마녀로 몰리는 사모펀드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나는 그렇게 안 한다” 혹은 “나는 그런 놈들이랑 다르다”는 정도의 변명 아닌 변명뿐이다.

왜 국내에선 사모펀드라는 이름으로 같이 묶이게 된 것일까. 애당초 PEF와 헤지펀드는 다른 법, 다른 이름으로 출발했다. PEF는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법 개정으로 출발했고, 헤지펀드는 2007년 제정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그 근거가 있다. 모든 게 다르지만 특정 투자자(국내선 49인 이하)로부터 돈을 모집한다는 유일한 공통점 때문에 금융당국은 2014년 앞 수식어만 달리한 사모(私募,)펀드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어 버린다. (그 이전 사모집합투자기구(일반사모펀드), 전문사모집합투자기구(헤지펀드), 사모펀드전문회사(PEF), 기업재무안정투자전문회사(기업안정PEF)라는 구분하기도 쉽지 않은 이름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까지 알 필욘 없다.)

여전히 구분은 쉽지 않다. 그래서 제안한다. 적어도 PEF와 헤지펀드라는 이름으로 나눠 부르는 것만이라도 하자. 생김새가 전혀 다른 사람도 이름이 같으면, 모르는 이에겐 같은 사람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PEF는 창업과 성장, 투자금의 회수, 그리고 신사업 투자로 이어지는 우리 산업 생태계에서 ‘미싱 링크’였던 회수시장을 일으킨 모험자본이다. 2005년 변방의 이름 모를 PEF였던 MBK파트너스는 불과 15년 만에 아시아를 호령하고 있다. 우리가 아시아 1등인 금융기관을 가져본 적이 있던가. PEF를 마녀라는 부정적 인식 틀에서 끄집어내야 국내 모험자본 육성책의 유일한 성공 사례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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