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3 (금)

[사설]부양의무 기준 폐지 않고 ‘의료 사각지대’ 해소할 수 있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정부가 10일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1~2023년)을 발표,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2022년까지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이로써 18만가구가 추가로 생계급여를 받게 되고 부양비 폐지에 따라 급여수준도 인상된다.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빈곤층의 최저생활 보장이 확대된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존속하기로 한 것은 유감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이란 가족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빈곤층에게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급여를 제공하는 수급요건을 말한다. 부양의무자의 재산과 소득이 일정 규모 이상이면 절대 빈곤층이라도 수급권자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수급대상이 되려면 본인의 소득뿐 아니라 부양의무자의 소득을 정부에 증명해야 한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비롯한 빈곤층의 극단적인 사례들이 잇따르면서 그동안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왔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헌법의 평등권에 위배될 뿐 아니라 ‘사적 부양’을 강요하는 것이 보편적 복지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정부가 교육급여(2015년)와 주거급여(2018년)에 이어 생계급여의 부양의무 기준까지 폐지키로 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기초생활보장제의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첫해 발표한 제1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에서도 임기 내 부양기준 폐지를 담았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지난해까지 누차에 걸쳐 이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임기 후반의 복지 청사진이라 할 2차 종합계획에서 의료급여 부양의무 기준 폐지를 제외함으로써 스스로 공약을 저버린 꼴이 됐다. 2018년도 건강보험 장기체납자는 8만9184명으로, 이 가운데 21%인 1만8452명은 1년간 단 한 번도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의료급여 기준에 들지 못해 보험료를 체납하고 병원을 가지 못하는 의료 사각지대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의료급여 부양의무 기준을 폐지하지 못한 데는 재정 부담 요인이 크다. 부양의무 기준을 폐지할 경우 매년 5조원 안팎의 재정이 든다. 수급자 확대에 따른 진료 남용 우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선 지원, 후 부양비 징수제’ 도입을 포함한 빈곤층 의료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 유튜브 구독▶ 경향 페이스북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