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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유럽 마지막 독재자' 31년 집권 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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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셴코, 벨라루스 대선 압승… 야권 지지자 수천명 항의시위

조선일보

옛 소련에서 독립한 동유럽 국가 벨라루스에서 9일(현지 시각) 치러진 대선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65·사진) 현 대통령이 압승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며 26년째 집권 중인 그는 이번 승리로 2025년까지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의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부정 선거가 자행됐다"며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투표 종료 직후 발표된 출구 조사에 따르면, 루카셴코는 전체 투표의 80%를 얻을 것으로 예측됐다. 야권의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37)는 9.9%를 얻어 2위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 같은 득표율 차이는 현지 여론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BBC 등이 보도했다. 장기 통치에 대한 거부감에다 최근의 경제난과 코로나 대응 실패까지 겹쳐 루카셴코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때보다 커진 것을 고려하면 득표율 차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티하놉스카야는 출구 조사 발표 직후 "내가 이번 선거의 승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9일 밤 수도 민스크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대선에 불복하는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인권 단체들은 이날 밤 경찰에 구금된 시위대만 3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루카셴코가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벨라루스 선거관리위원회는 역대 총선·대선에서 야권 후보의 등록을 거부하는 수법을 자주 썼다. 이번 대선에서 2위로 낙선한 티하놉스카야는 영어 교사 출신 주부로 원래 정치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반(反)정부 성향 블로거인 남편이 대선 후보 등록을 거부당하고 사회 교란죄로 체포되자 그 대신 입후보했다.

소련 시절 집단농장 운영 책임자였던 루카셴코는 집권 초기인 1990년대에 폭력배 소탕과 부정부패 척결로 인기를 끌었다. 러시아에서 싼값에 에너지를 수입하는 등 경제적 원조를 얻어내 2000년대 이후에도 지지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근년에 러시아 원조가 줄어들어 벨라루스는 심각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루카셴코는 올해 "보드카를 마시고 사우나 하면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꺼내 지탄을 받았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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