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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자산가들 "稅부담 늘어나도 집 안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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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은행 PB고객 50명 설문조사

"평생 번 돈으로 마련한 집 두 채가 전 재산인데, 늘어나는 세금을 감당하기 정말 힘드네요."

서울 강남에 집 두 채를 가진 70대 은퇴자 A씨는 "최근 이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40년 넘게 산 아내와 금슬이 나빠서가 아니다. "부부가 서류상 이혼을 해서 1주택자가 되면 세금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지인들 말에 귀가 솔깃해진 것이다. A씨는 "아무리 그래도 세금 때문에 이혼한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것 같고, 결국 아들에게 증여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조선일보

부동산 정책 설명하는 洪부총리 -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최근 부동산 정책에 대해 제기된 지적에 대해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부동산 가격 안정에 만족하지 않고 과도하게 오른 지역의 경우 조정을 받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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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자를 겨냥한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책에도 자산가 대부분은 집을 처분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본지가 5대 은행 PB(프라이빗뱅킹) 고객 5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현재 보유 중인 주택을 처분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86%(43명)가 '없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다주택자의 매물을 유도하려는 정책이 효과를 보기 어려울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응답자들의 평균 자산은 158억원이었고, 평균 연령은 55세였다. 1인당 평균 1.8채 주택을 소유했고, 거주지는 서울 강남과 비강남이 각각 42%로 80%를 넘었고, 경기(9%)·부산(6%) 등의 순이었다.

◇10명 중 9명 "현 정책으론 집값 잡기 어려울 것"

조선일보

/조선일보


설문 대상 중 92%(46명)는 "지금 정책으로 집값을 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 이유로는 '공급 부족'(8명)이 가장 많았고, '땜질식 정책'(5명) 등도 거론됐다. 40대 자산가 B씨는 "단기간 주택 가격이 조정받더라도 현금 자산가들에겐 오히려 투자 기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60대 자산가 C씨는 "다주택자들에게 세금을 강화하면 집을 내놓을 거라는 정부의 기대는 순진한 생각"이라며 "세금이 부담되긴 하지만 결국 집값이 오를 거란 믿음으로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 부담이 커졌냐'는 질문에는 82%(41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작년보다 세금이 두 배까지 늘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늘어난 세금을 충당하기 위해 집을 팔기보다는 은퇴 자금이나 예금, 임대료 등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답했다.

자산가들의 94%(47명)는 "현 정부의 부동산·세금 정책이 반시장주의적이다"라고 했다. 그 이유로는 '세금 만능주의'(8명)가 가장 많이 꼽혔다. 60대 D씨는 "소유 의지는 인간 본능이고 시장경제의 원동력인데 증세로 제한하려고 한다"고 했다. 50대 E씨는 "내가 세금 자판기가 된 느낌"이라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주택자들로선 세금 증가 폭보다 집값 상승 폭이 더 크므로 버티는 게 당연하다"며 "늘어난 세금은 임대료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산가 절반은 자산 해외 이전 계획

40대 벤처사업가 이모씨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 5월 미국 영주권을 획득했다. 작년부터 미국 우선주의인 '아메리카 퍼스트'와 코로나 사태로 미국으로의 이민과 비자 문턱이 크게 높아졌지만, 이씨는 연구원인 아내와 함께 미국 국익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부여되는 특별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재작년 기업을 매각해 생긴 재산을 해외로 조금씩 옮기고 있다. 이씨는 "정부의 사유재산권 침해가 선을 넘는 듯하다"며 "이런 분위기에선 기업 하기가 어려워 이민을 알아보는 기업인이 주변에 꽤 많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절반 가까운 46%(23명)가 "자산을 해외로 이전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자산 형태는 해외 주식이 18명(36%)으로 가장 많았고, 해외 부동산(13명), 달러(12명·이상 복수 응답) 등의 순이었다. 자산을 해외로 옮기려는 경향은 통계로 확인된다.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월) 한국 거주자가 해외 부동산 구입을 위해 송금한 규모는 1억4210만달러(약 17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2%(2600만달러) 증가했다.




[최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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