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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비가 오면 생각나는 전(煎)… 속설 아닌 과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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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삭! 맛있는 이 소리… 세로토닌 활성화해 장마철 우울감 덜어

"더운물과 찬물은 소리가 다르다. 더운물은 뭉근한, 찬물은 경쾌한 소리가 난다. 장맛비 소리가 가을비 소리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오감을 이용해 온몸으로 그 순간을 느낀다."

백영옥 에세이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구절. 비를 오감으로 느낄 때 함께하기 좋은 것이 '전'이다. 타닥타닥 내리는 장맛비를 보며, 바삭바삭 고소한 전을 한입 먹을 때 내 몸 가득 차 있던 '장마 블루'는 사라진다.

◇을지로를 힙지로로 만든 '보석'

서울 중구 백병원 옆 작은 골목길. '여기 식당이 있을까' 싶은 건물 3층에 을지로를 힙지로로 만든 술집 '보석'이 있다. 패션계에서 일했던 이진규씨가 작년 5월 문을 연 곳. 10명 남짓 들어가는 공간에, 비 오는 날이면 창밖으로 빗방울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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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보석’의 이 고소한 전이 을지로를 힙지로로 바꿨다. 비 오는 날 사케와 함께 즐기기 좋은 보석의 ‘보리새우미나리전’.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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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메뉴는 '보리새우미나리전'. 보석을 유명하게 만든 개국공신이다. 큰 볼에 미나리, 양파, 청양고추를 넣고 밀가루를 살짝 뿌린 후 물을 넣으며 반죽을 조절한다. 이 대표는 "반죽을 뻑뻑하게 하는 게 비법"이라며 "전을 부칠 때도 기름을 가득 부어 튀기듯 굽는다"고 했다.

프라이팬에 반죽을 부어 젓가락으로 틀을 잡고 보리새우를 뿌린다. 오픈된 주방이라 전 부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양파 간장에 찍어 한입 먹으면 보리새우의 고소함과 바삭함, 미나리의 쌉싸름한 맛이 차오른다. 새우 100%의 새우깡 같은 맛. 술 한잔이 생각나지만 주종(酒種)이 사케와 내추럴 와인만 있다. 매월 말일 다음 달 예약을 인스타그램으로 받는다.

◇'우이락' 해물파전은 우울증 치료제

비 오는 날 전이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비가 오면 일조량이 줄어 행복감을 유도하는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든다. 그러면 몸은 우울감을 느끼는데 전에 많은 아미노산과 비타민B가 몸속 탄수화물 대사를 높이고 세로토닌을 활성화해 우울감을 완화해준다는 것이다. 특히 해물파전엔 해산물의 요오드와 칼슘, 파의 황화알릴이 비타민 B1의 흡수율을 높인다. 빠르고 정확한 '우울증 치료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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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시장 '우이락'의 고추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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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시장 내 전집 '우이락'은 오징어와 새우, 파가 듬뿍 들어간 해물파전 맛집이다. 여기에 깻잎전, 두부전, 새송이전, 동태전 등 10가지가 한 접시에 나오는 전 모음 세트, 큼직한 고추 속에 고기소를 채워 바삭하게 튀겨낸 '고추튀김'도 별미다. 술도 소주, 맥주, 막걸리 등 종류별로 마실 수 있다.

◇압구정 거리의 한국식 타파스

부활한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가득 메운 냄새는 양식이 아닌 한식, 그중에서도 '전'이다. 최근 젊은 층에서 전은 '한국식 타파스(스페인 안주)'로 불리며 인기다. 작은 골목길 꽃과 그림으로 장식된 아기자기한 공간. 간판도 검은색 바탕에 영어로 적힌 'Miajeon(미아전)'이다. 메뉴판을 보기 전에는 이곳이 전집이란 걸 알기 어렵다. 대표 메뉴는 가늘게 채 썰어 한입 크기로 구워낸 감자전, 얇게 부친 육전, 통새우를 올린 새우전 등. 각각의 전마다 사워크림, 고추장 등 소스를 곁들여 낸다. 어두운 조명 아래 데이트하는 커플이 많다. 도토리묵 무침, 주꾸미 소면도 맛있게 맵다. '한식 와인바' 콘셉트로 소주와 막걸리는 없다.

클럽보다 멋진 남녀 손님이 많기로 유명한 '백곰막걸리'는 로데오를 다시 살린 주인공이다. 대표 메뉴인 '동해안 오징어 김치전'은 밀가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들어간 김치와 오징어가 매콤함과 감칠맛을 낸다. 외국인 손님도 많다. 할리우드 배우 귀네스 팰트로도 김치전 팬이다. 가게 이름처럼 수백 가지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막걸리에는 몸에 좋은 이노시톨, 콜린뿐 아니라, 시큼한 맛을 내는 유기산이 0.8%가량 들어 있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준다. '비 오는 날 막걸리와 전'은 속설이 아닌 과학이다.

[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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