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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사법행정권 남용' 법정 선 현직 대법관 "재판에 영향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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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이동원 대법관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권한 남용 사건에 연루된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현직 대법관이 이 사건에 증인으로 법정에 선 것은 처음이다. 이 대법관 외에도 노정희 대법관, 김기영 헌법재판관 등이 증인으로 채택돼 있어 줄 소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법관은 옛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을 맡았을 때 양승태 행정처로부터 사건을 특정 방향으로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지시대로 사건을 처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대법관은 이날 증인석에 서 법원행정처에서 관련 문건을 받은 것은 맞지만, 재판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이동원 대법관


이 대법관은 서울고법 부장판사이던 2016년 옛 통진당 의원들이 낸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의 항소심을 맡았다. 1심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지만, 항소심은 이와 달리 소송 자체는 성립할 수 있다고 보되 의원들의 청구는 기각했다. 이는 의원직 확인 권한이 헌재가 아닌 법원에 있다는 대법원 수뇌부 입장과 동일한 것이다.

검찰은 2016년 3월 임 전 차장이 이민걸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을 이 대법관과 만나도록 해 대법원의 입장이 담긴 법원행정처 문건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이 대법관은 이 전 기조실장과 만나 문건을 전달받은 것은 인정했다. 이 대법관은 “이 전 실장과는 연수원 때부터 친한 사이로, 내가 서울고법으로 발령받자 식사를 같이하자고 연락을 받았다”며 “식사가 끝나고 나서 읽어보라며 (이 전 실장이) 문건을 줬다”고 진술했다.

이 대법관은 해당 문건에 대해 “10페이지 내외의 짧은 보고서 형태 문건으로, 국회의원 지위에 대한 확인이 사법판단의 대상이냐,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면 국회의원의 지위를 인정할 것이냐 (여부), (각 경우의) 장단점 등 내용이 담겼다”고 했다. 이 대법관은 이 전 실장이 “’법원이 통진당 해산 결정에 따라서 소속 의원들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어떻게 판단하든지 그건 법원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법원에 그와 같은 재판권이 없다 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라고 물었다”고도 했다.

조선일보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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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대법관은 재판에는 영향이 없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 전 실장으로부터 전해들은 말이 판결문 작성에서 영향받은 바가 있나’란 질문을 받고 “전혀 없다”며 “법원 심판권 부분은 가지고 있던 경험과 지식으로 해결됐고 국회의원 지위상실여부는 재판부 구성원과 합의도 거치고 헌법 논문과 각종 자료를 찾아보면서 고민을 많이 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 대법관이 이 전 기조실장을 만난 뒤에 이 사건의 변론기일이 잡힌 배경을 물었지만, 그는 “이 전 실장과 만난 것과는 상관없다”며 “어떻게 검토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기일지정이 조금 늦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 대법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등에서 “(소신대로 한) 가장 자랑스러운 판결”이라며 외압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이 대법관은 이 전 기조실장으로부터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의 말은 듣지 못했다고도 했다. 이 대법관은 “이 전 실장은 제가 형이라고 부르는 친구 같은 사이인데, 그렇게 이야기했으면 제가 화를 냈을 것”이라며 “지금도 악의 없이 선의로 (문건을)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대법관은 “'기조실장이 법원 살림을 주도하니, 헌법재판소와의 관계에서 관심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통진당 사건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나중에 법원이 조사할 때에 알았다”고 했다.

그는 다만 법원행정처가 재판부에 문건을 전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재판부가 행정처에 '검토한 자료가 있느냐'고 물을 수는 있지만, 행정처에서 거꾸로 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다”라며 “모든 것은 재판부 의도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것이지, 외부에서 재판부에 접근하는 것은 절대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심문이 끝난 후 재판부가 소회를 묻는 말에 “대법관으로서 증인석에 앉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겠지만, 형사재판을 해본 사람 입장에서 누구든지 증거로 제출된 서면의 공방이 있으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

[김아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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