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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뉴스룸에서] 마이클 조던과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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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유투 라인에서부터, 말 그대로 날아가서 덩크슛을 꽂는 마이클 조던. 그래서 붙은 별명이 '에어(AIR)' 조던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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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웠다. 마이클 조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 얘기다. 1980년대 후반 시동을 걸기 시작해 90년대 미국 농구판을 넘어 세계 스포츠계까지 쥐고 흔든, 한해 수입만 1,000억원에 육박했던 마이클 조던 스토리다.

조던 이야기에다 점잖은 2인자 스코티 피펜과 악동 리바운더 데니스 로드맨 스토리는 물론, 동ㆍ서부를 각각 대표했던 라이벌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의 대결, 그리고 이후 등장하는 패트릭 유잉, 찰스 바클리 같은 숱한 NBA스타들까지, 모두 반가웠다. 개인적으론 겨우 185㎝ 밖에 안되면서도 넓은 시야와 감각적인 패스로 마천루 같은 선수들을 농락했던 존 스탁턴의 플레이 스타일을 가장 좋아했지만.

조던 이야기라면 조던을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나이키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시절 나이키 농구화 ‘에어 조던’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물론 ‘패완얼’(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란 말처럼 ‘에어 조던’의 비밀은 그저 조던이었을 뿐, 자기도 날 수 있을 줄 알고 한 여름에도 그 두꺼운 신발 껴신다가 약간의 무좀만 얻었을 그 시절 숱한 남학생들에겐 애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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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이 1985년 신었던 농구화 '에어 조던'. 최근 경매에서 56만달러, 약 7억원에 낙찰됐다. 소더비즈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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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의 엄청난 성공 요인은 뭘까. 다큐는 조던의 집요한 승부욕과 노력을 부각한다. 어릴 적엔 형 래리보다 뒤처졌던 재능, 2m가 채 안 되는 키 때문에 성공 가능성을 의심받았던 일, 당시 선수들 사이에 흔했던 마약에 일절 손대지 않았다는 이야기 등등. 조던은 근성과 땀방울로 이 모든 한계를 뛰어넘은 인물로 그려진다. 심지어 시카고에서 정치를 시작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등장시켜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시카고적인 그 무엇’에 대해 말하도록 한다.

단지 그 뿐일까. 우리나라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 이런 질문을 던져뒀다. 조던의 성공은 조던의 천부적 재질과 엄청난 노력 때문인가, 아니면 커다란 덩치들이 조그만 공 하나 쫓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 누군가 세 발짝 떼기 전에 그물에다 그 공을 집어넣으면 훌륭하다고 박수 쳐주는 곳에서 살았기 때문인가. 조던을 글로벌 스타로 만드는 데는 이념대결이 끝난, 자본주의가 팽창하던, 위성방송으로 국경이 무의미해진 ‘1990년대'도 기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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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한국 청중을 상대로 강연하고 있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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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은 해외 석학이 제시한 고차원적 사고 실험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미 ‘아인슈타인이 한국에 태어났더라면’으로 시작되는 블랙유머의 기나긴 리스트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조던의 성공요인 제1번은 ‘하필이면 그때쯤 미국 어딘가에서 태어난 일’ 정도 될까.

요즘 젊은이들에게 ‘공정’이 엄청나게 예민하고 중요한 화두라는 호들갑이 다소 허탈하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펙 쌓느라 그간 들인 노력'이라는 좁은 기준 하나로 당락이 결정돼야 한다는, 이 땅의 젊은이들 주장이 일리 있다 믿는가. 그렇다면 모든 직업을 연봉 순으로 나열한 뒤 성적 순으로 배분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든지, 그것도 아니면 ‘순수한’ 성적순 대결을 위해 모든 토대를 균등하게 만들자는 주장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요즘 한참 뜨거운 부동산 또한 '공정' 기준에 따라 한번 따져볼만한 주제 아닌가.

공정, 공정 소리 높여 외쳤지만 그 또한 정치적 소비에 그치고 만 게 아닌지 씁쓸하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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