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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하나라도 더 건져야죠..." 수해복구에 애타는 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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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밭으로 변한 포도, 인삼밭 1년 농사 망쳐
인력 장비부족 발 만 동동, 지원 손길 기다려
한국일보

육군 제32사단 장병들이 충남 아산시 탕정면 포도밭에서 침수당시 떠내려온 비닐과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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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해가 잠깐 반짝하더니 비가 또 오네….”

12일 오전 포도 주산지인 충남 아산시 탕정면 갈산리 포도밭. 들판의 포도나무는 포도송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지만, 흙탕물을 뒤집어쓴 탓에 싱그러운 초록색을 찾아 볼수 없었다. 마을 이장 정운태(55)씨는 이날 농민들을 돕기 위해 나온 육군 32사단 장병 40여명에게 일거리를 배정하던 중 멀쩡했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자 한숨을 토했다. 포도나무 지주에 걸린 비닐과 농작물 잔해를 치우던 장병들도 "비가 또 오면 농민들은 어떻게 하나…"라며 걱정했다. 빗줄기가 거세지자 장병들은 잠시 작업을 중단하고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장대비가 이어지자 결국 철수했다.

곡교천을 끼고 있는 이 마을은 지난 3일 시간당 최대 85㎜의 폭우로 포도밭 13만㎡(약 4만평)와 논, 밭 등 50만㎡가 제방을 넘어온 강물에 완전히 잠겼다. 이달 말 수확 예정이던 포도밭은 사람 키가 넘는 침수로 단 한 송이의 포도를 수확하지 못한 채 1년 농사를 망쳤다

이날 오후 금산군 부리면 평촌리 인삼재배 농민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침수 이틀 만에 돌아와 집과 인삼밭을 둘러본 주민들은 처참한 모습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인삼밭의 물은 빠졌으나 쑥대밭으로 변한 터다. 6년근을 주로 생산하는 일대 인삼 밭은 농민들이 길게는 10년을 준비해 수확을 앞두고 있었다.

인삼 주산지인 부리면과 제원면 10개 마을 농경지는 지난 8일 전북 용담댐에서 초당 3,200톤의 물을 방류하면서 불어난 하천물에 잠겼다. 겨우 몸만 빠져나온 90여가구 219명은 마을회관과 초등학교 등으로 대피했고 농경지 471㏊가 침수됐다. 또 집 안에서는 가재도구가 진흙탕에 나뒹굴고 가구는 물에 젖어 쓸 수 없게 됐다. 한 주민은 “논과 밭은 급류에 휩쓸려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주저앉았던 농민들이지만, 한 뿌리의 인삼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이내 밭으로 향했다. 일부 농민은 맨손으로 곤죽이 된 흙 속에서 헤쳐 쓸만한 인삼을 골라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끝이 아릴 정도로 아팠지만 물에 한번 잠긴 인삼은 금방 썩는 탓에 긴급 방제를 하거나 캐내야 했다.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었다.

비닐하우스에서 토마토와 딸기를 재배하는 농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온 가족이 달려들어 찢어진 비닐하우스를 뜯어내고 휘어진 하우스 파이프를 걷어냈지만 그 일은 끝이 안 보였다. 침수피해가 집중된 제원면과 부리면 458 농가에서 471㏊의 농지가 피해를 입었다. 이 가운데 200㏊가 인삼밭이다.

금산군은 이날 군 공무원을 비롯한 인근 군부대와 유관기관 자원봉사자들이 수해가 가장 큰 제원면과 부리면 지역 현장에 투입돼 본격 복구작업을 시작했다. 군에서는 각 실과와 직속기관, 사업소에서 선발한 100명과 군부대, 유관기관 자원봉사자 등 모두 800여명이 복구작업에 투입됐다. 자원봉사자는 자율방범연합대, 의용소방대, 적십자사, 새마을회, 바르게살기운동, 자연보호협의회, 충남도의회, 금산군의회 의원 및 직원 등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복구작업에 필요한 장비가 부족해 발을 굴렀다. 충남도내 곳곳이 수해를 입어 가용장비가 모두 동원되면서 지원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날 현재 도내에서는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다. 도로, 제방, 교량, 농경지 침수 등 피해 건수는 12,451곳, 피해액은 1,378억원으로 잠정집계 됐다. 이 가운데 교량, 제방 등 7,502건을 응급복구 했다. 전체 이재민 1,156명 가운데 1,000명은 귀가하고 156이 여전히 임시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산= 이준호 기자 junh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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