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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놀드 하우저 [조은정의 내 인생의 책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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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사람의 일

[경향신문]

경향신문

잦은 이사에서 가장 큰 일은 책을 옮기는 것이다. 이삿짐센터의 가벼웠던 견적은 짐을 부리고 정리할 때쯤이면 미안한 마음의 무게만큼 상회하여 애초 예산을 훌쩍 넘긴다. 하지만 이삿짐을 나르는 이들은 예외없이 거실 한가운데에 무덤처럼 둥글고도 높게 책 상자를 쌓아놓고는 가버린다. 자제하지 못하고 책을 사들인 사람은 시시포스를 떠올리며 상자를 풀고 옮기는 과업을 수행한다.

오른쪽에서 둘째 책장, 셋째 칸에 넣는 책이 정리 기준점이다. 운동장에서 “기준!” 하고 손을 들면 아이들이 좌악 모여드는 것과 같은 그런 원리라고나 할까. 갱지에 인쇄되어 표지마저 우글거리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신입생에게 선배가 넘겨준 명단 ‘반드시 읽어야 하는 100권의 책’ 중 하나였다. 이후 책장 잘 보이는 곳에서 나와 함께한 지 39년이 되었다.

책도 애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내게는 이 책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저자의 식견은 넓고도 깊어서 그 작은 책들이 거대한 성채처럼 느껴졌다. 호기롭게 집어들었으나 책장을 넘길수록 깊어지던 시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예술의 사회사적 접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접한 책은 그 많은 예술 장르와 예술가들이 서로 얽히고설킨 이유가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일러주었다.

미술이 사회에서 어떻게 구조화되고 작용하는가에 대한 나의 미술사 연구는 이 책에서 싹을 틔웠던 것이다.

지금도 이 책이 책장의 한자리를 차지한 이유는 방대한 지적유희에 동참하고픈 욕망 때문일 것이다. 부끄러운 그 욕망을 껴안고 있는 것은, 어쩌다 책에 눈길이 가면 알아가는 기쁨에 가슴 뛰던 그 시절이 눈앞에 펼쳐지는 신기한 경험을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은정 미술사학자·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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