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6 (목)

[경제포커스] '정의로운' 부동산은 없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부동산 가격은 시장 참여자 책임… 무주택·1주택 正義는 정치구호

조선일보

김덕한 산업1부장


서울 테헤란로의 포스코센터는 강남의 랜드마크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이다. 1992년 착공, 공사비 2800억원을 들여 3년 8개월 만에 준공했다. 그런데 준공 당시 땅값이 착공 때 땅값에 공사비를 더한 것보다 더 비쌌다. 1990년대 서울 강남의 엄청난 땅값 상승 속도로 불어난 땅의 가치가 최고급 공사비를 추월한 것이다. 당시 이 땅을 소유하고 있다가 포스코 사옥 건설 공사를 수주하는 조건으로 포스코에 팔고 공사했던 동아건설의 한 임원은 당시 "완전히 공짜 공사를 해준 셈"이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경제 정의의 관점에서 이 사례는 매우 부조리하다. 생산 의욕을 꺾고 불로소득을 탐닉하는 투기를 부추길 수도 있다. 그러나 정의를 세우겠다며 사후에 바로잡을 수는 없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든 폭락하든 이에 대한 책임은 시장 참여자가 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부동산 대책과 관련, "정부가 책임지고 주거의 정의를 실현해 나가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실수요자는 확실히 보호하고 투기는 반드시 근절하겠다"며 불로소득 환수, 투기 수요 차단 등을 정책 목표라고 해 '정의'가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이날 "비정상(다주택, 비거주 주택)에 대한 강력한 증세… 정상(실거주용 1주택)에 대한 충분한 배려…"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여권 차기 주자가 말한 부동산 시장의 '정의'와 '정상'이 되기 위해서는 부동산 시장엔 '1가구 1주택, 혹은 무주택 원칙을 평생 지키고, 값이 별로 오르지 않는 집을 가진 사람'만 있어야 한다. 이는 부동산 시장을 정치화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발언이다.

시장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모든 국민이 '1가구 1주택 실거주자'라면 전·월세 매물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다. 임대주택 이외에 제대로 된 민영주택 임대 회사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전·월세 매물을 내놓을 공급자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집을 사고팔고, 단기건 장기건 다주택을 갖게 되는 일이 봉쇄된다면 주택 건설을 통해 경제가 활성화하고 주거 수준을 향상하는 선순환도 어려워지게 된다.

서울과 세종시에 집 두 채를 가진 공무원들은 지금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지만 그중 상당수는 미분양이었던 세종시 아파트를 사실상 정부 권유로 샀던 사람들이다. 도시 건설은 돈이 투자되고 돌아야 가능한데 미분양 주택이 줄어들지 않았다면 세종시 건설은 지체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들을 '불의'와 '비정상'으로 몰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에서 주택은 삶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서민들의 중요한 자산 증식 수단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정부가 정책을 통해 1가구 1주택을 권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강제하면서 발생할 부작용을 외면한다면, 그건 포퓰리즘이다. 문 대통령은 "주택을 주거 복지의 대상으로 변화시켜 가야 한다"고도 했다. 저소득층 주거 안정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 저가 분양 아파트 등 정부가 정책적 노력을 해야 하지만, 시장의 부동산을 경제가 아닌 복지의 대상으로 대하는 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23차례 고강도 부동산 대책이 실패했는데도 정부는 아직도 한 번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되레 또다시 대책을 언제라도 내놓겠다고 전의를 다진다. 부동산 시장 참여자가 불의의 거대한 악당이기 때문에 이들과 싸워 수십 번 실패하는 건 당연한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한국 경제와 국민이 보게 될 엄청난 피해를 정부는 가늠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덕한 산업1부장]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