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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책 대신 태블릿, 명작 대신 만화책 찾더라도 아이 스스로 '읽는 재미' 느끼는 게 가장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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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코로나 시대, 읽기 교육은 이렇게

9세, 7세인 아이들이 코로나로 '집콕(집에만 머무르는 것)'을 시작했을 때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천군만마 같은 육아 동지였다. 하지만 책을 읽을 일이 줄어드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엄마가 국어교육과 교수여도 아이들 읽기 교육은 큰 고민거리다. 지나치게 편중된 영상 시청의 비중을 낮추고, 읽기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코로나로 책 안 읽는 아이들

처음에 시도한 방법은 시간 날 때마다 직접 책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아이와 친해질 수 있었고, 아이가 조금씩 책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책을 즐기며 깊이 있게 읽는 단계에 이르기는 어려웠다.

조선일보

주지연 영남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코로나 시대 읽기 교육에 대해 “전형적인 학습능력 향상을 위한 독서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아이들의 읽기 욕구를 고려한 다양한 시도가 바람직하다”고 했다. 주 교수와 7세 아들(왼쪽), 9세 딸이 집 거실 소파에서 동화책을 함께 보며 웃고 있다. /주지연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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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도는 동료 국어교육 전문가들의 조언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자녀의 읽기 능력 향상을 위한 부모 역할을 놓고 최근 전문가들은 다양한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사거나 빌리러 가는 등의 읽기 기회 제공, 아이가 읽었거나 읽을 수 있는 글의 종류, 분량, 수준을 파악하는 성취도 인지, 아이와 읽기와 관련된 여러 경험을 공유하는 상호작용, 부모가 읽는 행위를 아이에게 노출시키는 본보기 제공 등이다. 그래서 친정에 가서 내가 어릴 적 읽던 책을 들고 와 읽어주고, 아이와 함께 독후 활동지를 쓰고, 휴대폰 녹음 기능을 사용해서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해봤다. 아이가 볼 때마다 나도 짐짓 휴대폰 대신 책을 펼쳤다. 첫 번째보다는 나아졌다.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의 분량과 수준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하지만 역시 한계가 있었다. 아이는 의무로 주어지는 범위에서만 책을 읽었다.

다양한 읽기 욕구 존중해야

세 번째 시도의 실마리는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나왔다. 엄마가 골라준 책은 읽기 싫다던 아이가 눈을 빛내며 태블릿으로 무언가 읽고 있었다. '나무위키'란 인터넷 사이트였다. 아이가 방문한 인터넷 페이지들을 살펴보니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검색하는 데서 출발해서, 하이퍼텍스트(주제어로 인터넷에서 문서를 연결하는 기법)를 통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한국사 인물과 사건, 세계 지도, 애니메이션 산업 상황까지 찾아 읽었다. 세 번째는 이 같은 아이의 다양한 읽기 욕구를 존중해주는 것이었다.

어른들도 두꺼운 전공 서적, 딱딱한 교양서만 읽으면 부담스럽고 진저리가 날 텐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읽는' 행위에는 호기심 충족, 시간 죽이기, 심리적 위안 등 더욱 다양한 동기가 있는데, 아이의 다양한 욕구를 존중해주지 않았던 것 아닌가. 서점에서 아이 손에 들려있던 책을 내려놓게 하고 기어코 세계 명작 시리즈를 결제하던 버릇을 버리기로 했다. 아이 스스로 관심과 필요에 따라 다양한 플랫폼에서 읽기의 지평을 확장해가는 것은 분명 응원해줄 일이다.

인터넷 글 읽기도 지도해야

다만 인터넷으로 글을 읽다 보면 유해 환경에 노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정제된 형식의 동화책만 읽힐 때보다는 부모가 꾸준히 지도하고 관찰할 필요가 있다.

학습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종이책 전집을 한꺼번에 구입해서 억지로 읽히는 것으로 읽기 교육을 시작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학교 교육이 평소처럼 작동하지 않는 코로나 시대에 자유 시간이 늘어난 아이가 스스로 읽기에 재미를 붙이지 않는다면 영상이나 게임에 빠져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쉽다. 이럴 땐 아이가 일상에서 편안하게 읽기를 시작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엄마 노력에도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책 읽기보다 영상을 보고 게임 하는 것을 더 즐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데도 조금씩 익숙해지는 중이다. 그거면 됐다.

[주지연 영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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