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0 (금)

[신간]사건과 추억을 함께 비빈 밥 이야기…'혼밥판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CBS노컷뉴스 권혁주 기자

노컷뉴스

아들에게는 밀가루가 몸에 좋지 않다며 자제하길 권하면서도 본인은 칼국수든, 라면이든, 전이든, 도넛이든 모든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어머니가 있다.

그런 어머니가 위암에 걸려 수술을 했다. 객지에 나가있던 대학생 아들이 집에 왔는데 어머니는 그 아들과 나가 칼국수 한 그릇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아들은 암이 재발한 어머니의 위장으로는 밀가루 음식을 소화할 수 없을 것이라며 청을 거절했고 어머니는 얼마 뒤 돌아가셨다.

"발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장 후회되던 일이 그날 칼국수를 사 먹으로 가지 않은 것이었다. 그때 내가 대학생이 아니라 지금의 나이였다면 칼국수 맛집을 찾아 모셨을 것이다. 어머니가 폐암이었다고 해도 그토록 원한다면 담배에 불을 붙여드리며 '이거 돗대입니다'라고 농을 쳤을 것이다. 살아보니 하고 싶은 것을 못하면 그 크고 작은 좌절감이 칼국수 그릇 바닥에 가라앉은 바지락 껍데기처럼 마음속 밑바닥에 고스란히 쌓여 있다가 나주에 말썽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3페이지

'혼밥판사'(정재민 지음/창비 펴냄)는 2017년에 판사직을 그만둔 저자가 음식에 사건과 추억, 인생을 버무린 에세이다.

군 법무관 시절 본인이 라면을 끓여줬던 탈영병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야기, 이혼 소송 중이던 아내가 남편에 대해 '통닭 한번 사온 적이 없었다'고 외치더란 이야기 등
잔잔하게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들이 많다.

사건은 심각하지만 책은 쉽게 술술 읽힌다. 글이 진중하면서도 유쾌하다. 음식이라는 소재를 빌려 사람들과 삶과 세상에 대해 하는 이야기다.

저자는 "음식을 알면 알수록 맛이 있다, 혹은 없다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을 살면 살수록 인간을, 그의 행위를, 그의 인생을 유죄와 무죄, 위법과 적법.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며 "음식을 성분과 레시피가 아닌 음식 자체의 맛과 냄새와 온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사람과 인생도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