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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평판은 위기에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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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33]

공공기관이나 기업, 학교 등 어느 조직을 막론하고 중요한 일을 맡길 사람을 선발할 때 반드시 거치는 절차가 있습니다. 평판 조회입니다. 아무리 해당 분야의 지식과 기술이 탁월해도 평판이 안 좋으면 채용을 꺼립니다. 평판이 나쁜 사람은 조직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반면 평판이 좋은 사람은 적합한 능력만 있으면 쉽게 발탁됩니다. 평판만으로 직장을 구할 수는 없지만 평판에 따라 기회를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것이죠. 어떤 사람에 대한 평판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평판입니다. 평판은 조직과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피하게 마련이니까요. 사회과학과 경영학에서 평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배경입니다.

평판의 중요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진(晉)문공이 제환공에 이어 춘추시대 두 번째 패자로 등극한 것도 평판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진문공의 이름은 중이입니다. '순망치한'과 '가도멸괵'이라는 고사성어를 만든 진헌공의 여러 아들 중에 한 명입니다. 그가 역사의 무대에 오른 것은 진헌공의 젊은 아내 여희의 음모에서 비롯됩니다.

진헌공은 잔인하고 냉정한 군주였습니다. 권력을 넘볼 만한 모든 친족을 모두 죽이고 장성한 친 아들들마저 의심의 눈초리로 봤던 냉혈한이었죠. 그는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긴 시기에 젊고 아름다운 여희를 얻었습니다. 그 전에 그는 이미 많은 아들들을 두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제나라 공녀가 낳은 태자 신생을 비롯해 이민족인 적족 출신 자매에게서 얻은 중이와 이오가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여희가 해제를 낳자 헌공은 후계자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는 신생과 중이, 이오를 도성에서 쫓아내 각각 다른 변방에 배치했습니다. 태자 신생은 곡옥이라는 곳으로 보냈습니다. 결국 도성에는 여희의 아들 해제만 남았습니다.

후계와 관련해 흔들리는 진헌공의 마음을 여희는 부채질했습니다. 자신이 낳은 아들 해제를 보위에 올리려는 욕심이 컸던 겁니다. 그러나 합법적이고 정당한 방법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측근인 우시와 함께 음모를 꾸밉니다. 먼저 신생이 궁궐 동산에서 자신을 희롱하는 듯한 모습을 헌공이 목격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태자에 대한 의심과 시기심을 증폭시키고 나서 반역 사건을 조작합니다.

해제가 10살이 됐을 무렵인 기원전 656년 여희는 태자를 만나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군왕께서 꿈에 돌아가신 (태자의) 친어머니인 제강을 보셨다고 합니다. 곡옥으로 돌아가 제강의 제사를 올리고 제사에 올렸던 음식을 군왕(헌공)에게 보내시지요." 신생은 이 말을 믿고 제사를 올린 뒤 음식을 도성으로 보냈고, 여희는 헌공이 사냥 나간 틈을 타 그곳에 독을 묻혀놓았습니다. 헌공이 돌아온 뒤 여희는 모르는 척 그 음식을 개와 환관에게 먹여 급사하는 모습을 연출합니다. 태자가 부친을 죽이고 빨리 군주의 자리에 오르려 한 것처럼 꾸민 것이었죠. 이에 분노한 헌공은 태자 자리를 박탈하는 것은 물론 아예 죽여야 한다는 결심을 굳힙니다. 결국 신생은 그해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사건의 여파는 중이에게도 미쳤습니다. 여희는 신생뿐 아니라 중이와 이오도 제거하려고 헌공에게 무고를 합니다. "신생이 제사 고기에 독약을 넣었다는 사실을 두 공자도 알고 있었다고 하옵니다." 여희의 모함에 빠진 것을 안 중이와 이오는 부랴부랴 몸을 피합니다. 헌공은 두 공자가 모반할 뜻이 있다고 판단해 군대를 파견했고 중이는 곧바로 적나라로 도주합니다. 하지만 그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진나라의 많은 명사들이 그를 따라 함께 망명했으니까요. 이들 중에는 호언과 조쇠, 위주, 선진, 개자추, 전힐 등 훗날 진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객관적 상황만 보면 사람들이 중이를 따라 나서지 않는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헌공이 해제를 태자로 세우기로 한 마당에 중이가 후계를 잇는다는 보장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곳저곳 떠돌다가 객지에서 생애를 마감해야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인재들은 자발적으로 중이를 따라 나선 것은 그의 인간적 매력과 리더십, 그리고 모두가 인정하는 평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언젠가는 중이가 진나라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매일경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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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기업인들 중에도 평판이 좋은 이가 많습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는 평판 조사에서 줄곧 '베스트 CEO'로 선정되곤 합니다. 인도 출신인 그는 선마이크로시스템의 소프트웨어에서 개발자로 근무하다가 1992년 MS에 영입됐습니다. 기업용 클라우드 담당 부사장을 거쳐 2014년부터 사령탑을 맡았는데 기존 사업구조를 PC 운영체제에서 클라우드로 전환해 MS의 중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경영자로서 그의 철학은 '히트 리프레시(Hit Refresh)'라는 말로 집약됩니다. 그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새로 고침' 키보드에서 힌트를 얻은 것인데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면 업무나 인간관계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평판이 좋아진 것이지요. 초심을 지키는 것은 말이 쉽지 실행은 어렵습니다. 평판을 언제나 똑같이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항상 자신을 되돌아봐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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