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9 (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작지만 속이 꽉 찬 무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레코드 플레이어, 반딧불, 사랑하는 이와 함께 숨 쉬는 것…. 이토록 아름다운 순간을 우린 모두 우주 어딘가에서 맞이한다. 그렇게 공기 속을 진동시키며 마법처럼 어둠을 밝히는 날갯짓을 하고 나면 우리는 모두 여름 들판의 반딧불처럼, 결국엔 사라져버리게 된다. 이 변하지 않는 사실을 알아 버린 우린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에 결국 끝이 있다는 걸 알아 버린 우리, 어쩌면, 해피 엔딩일 수 있을까?’

시티라이프

▶Info

-장소 예스24스테이지

-기간 ~2020년 9월13일

-티켓 R석 6만6000원, S석 4만4000원

-시간 화·목·금 오후 8시 / 수 오후 4시, 8시 / 토 오후 3시, 7시 / 일 오후 2시, 6시(월 공연 없음)

-출연 올리버-정문성, 전성우, 양희준 / 클레어-전미도, 강혜인, 한재아 / 제임스-성종완, 이선근

시티라이프

2016년 초연된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당시 작품은 관객 평점 9.8점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 결과 이 작품은 제2회 한국뮤지컬어워즈 6개 부문, 제6회 예그린어워드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내용은 멀지 않은 미래인 21세기 후반 서울, 인간의 삶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인 ‘헬퍼봇’이 모여 사는 아파트가 배경이다. 구형 헬퍼봇5인 올리버는 언젠가 자신을 찾아 올 주인 제임스를 기다린다. 그는 옛 주인을 닮아 아날로그를 좋아한다. 오래된 레코드 플레이어, 재즈 잡지, 종이 지도 등. 이웃의 헬퍼봇6인 클레어가 충전기를 빌리러 올리버에게 찾아온다. 클레어는 올리버에게는 없는 사회적 기술을 갖춘, 인간에 더 가까워진 로봇이다. 겉으로는 활발한 성격이지만 옛 주인들이 이별하는 과정을 지켜본 탓에 관계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다. 둘은 충전기를 매개로 가까워진다. 올리버는 제임스가 있는 제주도에 가고 싶어 한다. 클레어는 제주도 숲에만 있다는 반딧불이 보고 싶다. 둘은 제주도로 떠난다. 그 과정에서 올리버와 클레어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두 헬퍼봇은 이 감정을 의심한다. ‘우리는 사랑을 하지 못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데….’ 둘은 애써 이 감정을 부정하지만 그 감정이 깊어질수록 그것이 가져오는 고통 또한 깨닫게 된다.

극은 한마디로 ‘예쁘다’. 단 세 명이 등장하는 뮤지컬답게 인물들의 감정은 섬세하고, 세 명의 조화는 110분 동안 빈틈이 없다. 애초 이 극의 제목은 ‘우린 왜 사랑했을까’였다. 그것이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바뀌었는데, 로봇의 사랑이라는 소재를 내밀한 감정 변화로 아름답게 전환시킨 연출진의 솜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특유의 서정적 감성으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한 박천휴 작가, 윌 애런슨Will Aronson 작곡가, 트라이 아웃부터 함께한 섬세한 감성의 김동연 연출, 주소연 음악 감독의 6인조 라이브 밴드의 구력이 느껴지는 호흡 또한 좋다. 무엇보다 초연 오리지널 캐스트 전미도, 정문성, 성종완과 재연을 성공적으로 이끈 전성우, 강혜인, 그리고 주목받는 신인 양희준과 한재아의 모습도 관객을 즐겁게 한다.

물론 이 극에서 단연 주목할 만한 인물은 전미도이다. 전미도는 우리에게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채송화 선생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이미 공연계에서는 스타급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배우다. 2006년 ‘미스터 마우스’로 데뷔했으니 벌써 15년 차다. 그동안 ‘라이어’, ‘김종욱 찾기’, ‘신의 아그네스’, ‘번지 점프를 하다’ 등의 작품을 선보였고 2017년, 2018년 2년 연속으로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TV드라마 히트로 대중적 인기를 장착한 전미도의 첫 뮤지컬 공연이라는 점에서 이 극은 화제를 모았고, 전미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몰입도 높은 연기를 선보인다.

웃음, 감동, 사랑을 한데 버무린 극은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 극은 소품이지만 결코 작은 이야기, 작은 볼거리가 아닌, ‘어쩌면’ 세상의 사랑을 한곳에 담은 속이 꽉 찬 이야기다.

[글 김은정(프리랜서) 사진 CJ ENM]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41호 (20.08.11)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