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4 (금)

[다시, 보기]기안84 사과에 담긴 '여성혐오' 시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기안84, 웹툰에서 인턴 여성이 팀장과 성관계 통해 정직원으로 전환된다는 내용 그려

웹툰 공개 후 '여성혐오' 논란 불거지며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

논란 불거지자 웹툰 일부 수정 후 사과했지만 여전히 비판 거세

웹툰에서 보인 남성 권력의 시선이 사과문에서도 이어져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물론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연애'로 표현

'꽃뱀 프레임' 통해 바라본 여성은 성적 대상화·저평가된 존재

여성과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대한 성찰 필요한 때

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노컷뉴스

(사진=네이버 웹툰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시, 보기'는 CBS노컷뉴스 문화·연예 기자들이 이슈에 한 걸음 더 다가가 현상 너머 본질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발빠른 미리 보기만큼이나, 놓치고 지나친 것들을 돌아보는 일은 우리 시대의 간절한 요청입니다. '다시, 보기'에 담긴 쉼표의 가치를 잊지 않겠습니다. [편집자주]

웹툰 작가 기안84가 '복학왕' 여성 혐오 논란에 관해 사과했다. '풍자'를 위해 고민한 장면이 독자에게 '불쾌감'을 드렸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사과에서는 여전히 '여성혐오'의 시선이 드러나고 있다.

기안84는 지난 11일 공개된 '복학왕' '광어인간' 편에서 무능력한 인턴 봉지은이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직장 상사인 팀장과 성관계와 연애를 통해 정직원으로 전환되는 내용을 그려낸다. 이 과정에서 봉지은이 자신의 배 위에 조개를 올린 뒤 깨부수는 장면과 조개의 모습, 이어지는 "같이 잤어요?" "술 취해서 키스" 등의 문장이 나온다.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올 정도로 '여성혐오' 논란이 크게 불거지자, 기안84는 지난 13일 '복학왕'의 새 에피소드 '광어인간' 2화 말미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해당 장면이 '풍자'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며, 불쾌감을 드려 죄송하다는 것이다.

기안84는 "지난 회차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가 귀여운 수달로 그려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먼저 '풍자'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게 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풍자란 '문학 작품 따위에서, 사회의 부정적 현상이나 인간들의 결점, 모순 등을 빗대어 비웃으면서 비판'하는 것을 말한다.

모욕적이거나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들어가는 순간 풍자라는 이름과 기능은 사라지게 된다. 비판적 내용에 대한 해학으로 보는 이가 웃을 수 있어야 하지만, 기안84가 말하는 '개그스럽게 풍자'하기 위해 사용한 장면들은 차마 웃을 수 없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언어와 그림이 어떻게 풍자가 될 수 있을까.

노컷뉴스

(사진=네이버 웹툰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라는 '여성'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사회를 풍자하려 했다고 한다. 왜 애초에 여성이 '귀여움'으로 승부하며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건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여성이 직장이라는 사회에 진입하는데 '귀여움'이란 전혀 필요치 않은 부분이다. 이는 오히려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데 이용되는 외적인 억압 내지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사회적 편견에 가깝다.

여성이 한 명의 개인으로서 자신의 능력만으로 오롯이 평가받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을 풍자하고자 했다면서, 왜 여성에 대한 암묵적인 차별이 만들어낸 현실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또 기안84는 "특히 수달이 조개를 깨서 먹을 것을 얻는 모습을 식당 의자를 제끼고 봉지은이 물에 떠 있는 수달로 겹쳐지게 표현해보자고 했다"고 말한다.

왜 굳이 봉지은을 수달로 표현해 조개를 깨서 먹을 것을 얻는 모습으로 그리고자 했는지 재차 물을 수밖에 없다. 조개가 갖는 상징성을 웹툰의 앞뒤 맥락과 연결해 본다면, 여성의 성기를 조개에 빗대어 나타낸 그동안의 표현법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성적인 암시를 나타내는 뒷부분의 장면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뒤이어 기안84는 "또 캐릭터가 귀여움이나 상사와 연애해서 취직한다는 내용도 독자분들의 지적을 살펴보고 대사와 그림도 추가 수정했다"고 말했다. 문제의 조개는 대게로 수정됐고, "같이 잤어요?"는 "같이 있었어요?"로 바뀌었다. 그러나 "같이 있었어요?"로 수정됐다고 해서 앞뒤 맥락은 물론 '봉지은'과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달라진 건 아니다.

상사와 연애해서 취직한다는 이 웹툰 설정은 우리 사회, 특히 대다수 남성 권력이 여성 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해당 웹툰에서 문제가 된 장면은 애초에 '연애'라는 게 성립하지 않는다. 기안84가 '연애'라 부르는 부분은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웹툰은 직장 내 상사가 위계를 이용해 성폭력을 저지르고, 이를 직장 내 생존과 연결하는 사회의 오래된 병폐를, 여성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이익을 취한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이른바 '몸을 팔아'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한다는 식의 해석은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여성을 '꽃뱀'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다를 바 없다.

노컷뉴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능력이 없으니 몸이라도 내어줘야 일자리를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들, 인턴의 몸을 취한 후 그것이 마치 연애 감정인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들, 그것이 곧 여성과 직장 내 여성에 대한 혐오 그 자체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지속되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다. 우리 사회 여성과 여성 직장인이 어떻게 쉽게 성적 대상화 되고 차별의 대상이 되는지, 여성 노동자는 개인이 가진 능력과 별개로 이토록 저평가되는지 웹툰 한 컷 한 컷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안84의 한 컷 속에는 풍자를 위해 구조적인 여성 문제를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 있는 것은 그저 남성 권력의 시선으로 바라본 소위 남성문화의 도돌이표만이 있을 뿐이다.

이게 뭐가 문제냐는 물음과 안일한 인식에서 혐오와 차별의 역사는 이어져 왔다. 기안84는 그동안 거듭 제기된 문제에 사과해 왔지만, 근본적인 성찰은 없었다. 그렇기에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부디 지금이라도 '여성'과 '약자'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혐오와 차별의 단어가 됐는지 성찰하고 스스로에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