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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지평선] 진보의 의제, 보수의 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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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 내 청과시장 경매장을 방문해 수박 경매 시작에 앞서 상인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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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스웨덴의 개념적 초석을 놓은 정치인은 페르 알빈 한손 총리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국난을 적극적인 경기 부양과 중립 정책으로 헤쳐나간 그는 1928년 사회민주당 대표 시절 의회 연설에서 "국민의 가정"이라는 말을 썼다. 사민당이 애초 "노동자의 나라" 건설이라는 사회주의 목표와 거리가 있긴 했지만 "모든 사회적 경제적 장벽의 철폐"를 위해 우파의 개념까지 빌려온 것이다. 이에 따른 적극적인 복지 정책, 노사정 타협이 지금의 스웨덴을 만들었고 사민당 장기집권의 토대가 됐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위기에 몰린 새누리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하고 박근혜를 위원장으로 추대했다. 당시 박 위원장이 정책 쇄신을 위해 영입한 인사가 김종인 한국외대 석좌교수였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당 안팎에서 주목 받았지만 정강정책에서 '보수'를 지우자고 했다 역풍을 맞고 물러났다. 결국 선거에서 경제민주화 구호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인의 흔적은 '기초노령연금 확대' 등으로 공약에 반영돼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의 미래통합당이 다수의 진보 의제를 포함한 새 정강정책 초안을 발표했다. 진보 정당에서도 선뜻 합의 보지 못하는 기본소득 도입을 첫 페이지에 명시했다. '국민 각자가 나의 자유와 행복을 구가하고 신뢰와 친밀성이 넘치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는 기존 정강정책 문구는 '누구나 경제적 자립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개인 중심의 복지 체계 개편'과 '소외계층을 위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한다'로 바뀐다.

□8년 전 이미 "진보, 보수 이념적 잣대는 무의미하다"고 했던 김종인이 개혁의 전권을 쥐었으니 실행의 초석을 다지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여당의 지지율 하락은 순풍이다. 진보와 보수가 특정 의제를 독점하던 시절이 저물고 있다. 시대적 의제가 무엇인지 읽어내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게 중요해졌다. 통합당이 정강정책만 파격이고 실행은 최근 부동산 대책 같다면 왼쪽 깜빡이 켜고 오른쪽으로 차 몬다는 비웃음만 살지도 모른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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