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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김형석의 100세일기] ’100세 선물'을 후배들과 나눈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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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조선일보

일러스트=김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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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여름은 힘들게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찾아오는 손님이 없고, 내가 보고 싶은 사람과도 전화로 용무를 끝낸다. 설상가상으로 지루한 장마까지 겹쳐서 작은 섬에 정배(定配)되어 사는 기분이다.

그래도 지난 7월 마지막 수요일에는 즐거운 모임이 있었다. 사랑하는 후배 교수들과 서대문구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점심을 같이했다. 헤어질 때는 동석한 젊은 친구들에게 선물도 주었다. 와인과 안동소주, 캐나다의 명품인 벌꿀이었다.

주는 내 마음이 그렇게 행복할 줄은 몰랐다. 100세라고 해서 연초부터 받아두었던 물건들이다. 이 글을 쓰면서 좀 걱정이 된다. '선물로 드렸는데 결국 남에게 주는가'라고 생각할까 봐서다. 그러나 내가 받았어도 같이 나누어 갖는 행복이 더 크니까 보내주신 분들도 더 기뻐해 주셨으면 좋겠다.

사실 100세가 되면서 무척 많은 선물을 받는다. 강원도 양구의 따뜻한 마음의 선물은 말할 것도 없다. 어제도 "옥수수가 익어가고 있으니까 기다려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오래전에는 기차 안에서 만난 손님이 명함을 달라기에 준 것뿐인데 며칠 뒤부터 토종닭, 유정란을 계속 보내준다. 전북 고창에 가서야 따뜻한 인사를 나누면서 그가 어떤 분인지 알고 지낸다. 인촌 김성수를 존경하는 마음도 나와 같았다.

금년 여름에는 경상도 성주에서 보내주는 참외를 계속 받고 있다. 내게는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참외다. 6월에는 청주의 한 교회에 설교하러 갔는데, 직접 담갔다는 김치 두 그릇을 선물로 받았다. 그렇게 맛 좋은 김치는 처음이었기에 전화로 인사를 했더니, 그는 "오히려 감사하다"면서 또 김치를 보내주었다. 그런 선물을 보내주는 분들은 내 강연을 들은 사람이거나 조선일보 주말 섹션 '백세일기'를 읽은 독자들이다.

연세대학과 양구에까지 연락을 해서 내 전화번호나 주소를 찾아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다. 지난달에는 한 회사 대표가 소포를 보내왔다. 내가 주문한 적이 없어 처음에는 잘못 전달된 줄 알았다. 뜯어 보니 안에는 '저희 회사 창업자이며 유명한 디자이너이신 알렉산드로 멘디니씨가 88세에 돌아가셨는데, 살아계셨다면 두 분이 좋은 대화를 나누셨을 것 같아 기념으로 보낸다'고 적혀 있었다. 멋진 디자인 예술품인 탁상 전등을 보내왔다. 그렇게 받은 일상 생활용품들은 감사히 간직하면서 오래 사용한다.

나는 이런 마음의 선물들을 계속 받을 때마다 우리가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감격에 젖곤 한다. 한편으로는 ‘더 오래 살면서 지금까지 받은 마음의 선물에 보답해야겠다’는 용기를 낸다.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만은 아니다. 빼앗아 가지려는 사람보다는 나누어 주려는 이웃이 더 많다. 그 행복과 보람을 좀 더 높여가야 하겠다. 함께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잡으면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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