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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그렇구나! 생생과학] 내 뇌는 몇 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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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뇌 MRI 영상 분석해 피질 두께 측정
남들보다 얇으면 치매 가능성 대비
예방의학 시대, 검진 신뢰도 높이는 AI
“진료 질 향상 기대…과도한 믿음은 금물”

피부처럼 뇌도 늙는다. 나이가 들면서 피질 두께가 얇아지기 때문이다. 피질은 뇌의 표면을 덮고 있는 층으로, 신경세포가 모여 감각과 운동 기능은 물론 지적 기능까지 관장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피질 두께가 더 빠르게 감소한다. 초기엔 당사자도 대부분 이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다. 시간이 더 지나 사고력이나 기억력에 뭔가 이상이 생겼음을 감지하고 병원을 찾을 때는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인 경우가 많다. 그 병은 바로 치매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뇌 피질 두께가 얇아질수록 치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건 의학적으로 증명돼 있다. 그럼 자신의 뇌 피질 두께가 어느 정도인지, 다시 말해 뇌가 얼마나 노화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면 자신이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미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피질 두께를 측정해 뇌의 노화 정도를 알려주는 인공지능(AI)이 등장했다. 최근 일부 대학병원과 검진센터에 도입된 이 AI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의료기기로 허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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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한신메디피아에서 의료진이 수검자의 뇌 자기공명영상(MRI)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 한신메디피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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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질 두께를 같은 연령대와 비교


뇌가 얼마나 노화했는지를 알고 싶은 수검자는 먼저 자기공명영상(MRI) 장비로 뇌를 촬영하게 된다. 뇌의 단면을 찍은 MRI 영상은 대개 흑백 사진이다. 사진에서 진하게 나오는 뇌 안쪽 부분이 수질, 표면과 가깝고 색이 연하게 보이는 부분이 피질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MRI 사진에서는 의사조차도 피질과 수질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경계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데다 주름이 많은 뇌 구조의 특성상 사진에 크고 작은 굴곡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료진의 MRI 영상 판독으로는 대개 피질 두께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정도만 파악된다.

이와 달리 AI는 뇌의 단면별 MRI 영상을 데이터로 저장해 각각을 아주 작은 픽셀 단위로 인식한다. 뇌 사진을 수많은 조각으로 잘라 비교 분석하기 때문에 의사의 눈과 경험이 찾아내지 못하는 미세한 부분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분석한 수검자의 피질 영상을 AI는 예전에 학습해둔 건강한 사람들의 뇌 데이터와 비교한다. 수검자의 뇌 피질 두께가 같은 연령대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얼마나 두껍거나 얇은지를 수치로 계산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수검자는 같은 연령대 사람들 중 자신의 뇌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된다.

특히 AI는 뇌의 각 영역별로도 피질 두께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뇌의 좌우에 자리한 측두엽(관자엽)에서 노화가 지나치게 진행되는 사람은 기억이나 언어 능력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측두엽에는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뇌 부위인 해마가 들어 있다. 이마 바로 안쪽인 전두엽(이마엽)의 피질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화를 잘 참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뇌에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전두엽은 인지기능을 총괄하고 감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정수리 쪽에 있는 두정엽(마루엽)은 감각 정보를 통합해 공간적 위치를 인식한다. 이곳이 잘못되면 감각을 잘 느끼지 못하고, 공간 지각 능력이 감퇴될 수 있다. 뇌의 가장 뒷부분인 후두엽(뒤통수엽)은 주로 시각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여기가 빨리 노화하면 보는 데 불편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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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크게 전두엽(분홍색)과 두정엽(빨간색), 후두엽(초록색), 측두엽(파란색)의 네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각 영역마다 피질이 지나치게 얇아지면 조금씩 다른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 JL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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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LK 인스펙션이 개발해 의료기관에 공급한 인공지능 뇌 노화 분석 프로그램이 피질 두께 측정 결과를 보여주는 화면. JL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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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특정 영역의 피질 두께가 남들보다 얇아졌다고 해서 반드시 이런 영향들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피질이 얇다는 걸 미리 알면 혹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으니 뇌 건강에 주의할 필요가 있음을 환기하는 계기가 된다. 여러 차례 검진에서 피질 두께가 감소하는 속도가 이례적으로 빠르게 측정된 사람은 치매 가능성이 대해 의료진과 적극적으로 상담해볼 수도 있다. 수검자 입장에선 단순히 ‘뇌 MRI 정상’이라는 의사 소견 문구만 보는 것보다 뇌 피질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와 의미를 알 수 있어 검진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진다.

AI 기반 뇌 노화 분석 시스템을 개발한 인공지능 솔루션 기업 JLK 인스펙션의 박종혁 선임연구원은 “건강한 성인 1,000여명의 뇌 영상 데이터로 학습한 AI가 뇌 피질 두께를 측정·비교해주는 검진 서비스가 상용화한 것은 처음”이라며 “검진기관에 도입돼 학습량이 쌓일수록 더 정확하고 안정적인 분석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JLK는 AI 뇌 노화 분석 시스템에 대해 베트남과 호주, 뉴질랜드에서도 허가를 받았다. 현재 터키와 태국, 인도네시아에서도 허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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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한신메디피아에서 의료진이 수검자의 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선 뇌 MRI 촬영 후 사진을 인공지능 기술로 분석해 노화 정도를 알려주는 검진 서비스를 운영한다. 한신메디피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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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민감도 높이는 수단


4차 산업혁명이 확산함에 따라 세계 곳곳의 의료기관에서 의사들이 AI의 분석 결과를 참조해 검진이나 진단, 치료 등을 수행하는 모습이 점차 자연스럽게 자리잡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그 동안 AI는 주로 의료진이 의사결정을 하는 데 보조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를테면 암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법을 찾아야 할 때 의사가 AI의 판단을 참고 삼아 종합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식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어떤 치료가 적합한 지 판단하는 주요 근거는 학술논문이다. 학습할 수 있는 논문 양은 AI가 의사보다 많고, 실제 환자 치료 경험은 의사가 우월한 만큼 둘이 협업하면 더 나은 판단을 얻을 수 있다.

최근 들어선 AI를 검진에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의료기관이 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의학은 환자가 이미 걸린 병을 찾아내고 고치는 데 집중했다. 반면 앞으로는 병이 생기지 않게 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는 예방의학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질 거라는 데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견이 없다. 예방의학의 기본은 건강검진이다. 검진기관으로선 수검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차별화한 서비스를 도입할 필요가 있고, 이에 AI가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이다.

건강검진은 수검자가 몰랐던 질환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게 핵심이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줄 알았는데 병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는 건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질환이 있는데도 검진에서 찾아내지 못하는 건 수검자에게도 검진기관에도 모두 치명적이다. 검진에 쓰이는 기술이 민감도(Sensitivity)가 높아야 하는 까닭이 이 때문이다. 민감도는 실제로 병에 걸린 사람을 얼마나 잘 찾아내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AI는 사람이 혼자 판단할 때보다 검진의 민감도를 높일 수 있다. 검사 영상이나 수치 데이터가 내포한 의미 중 사람이 놓치는 부분을 AI가 보완해주기 때문이다. 지난 6월부터 뇌 노화와 유방암, 폐 검사에 AI 분석 시스템을 도입한 건강검진기관 한신메디피아의 표성희 원장은 “만약 흉부 X선 영상에서 AI가 특정 부위에 폐렴이나 결핵 확률이 높다고 짚어내면 의사는 그 부위를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하게 된다”며 “이 과정에서 검진의 민감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병이 있는 사람을 없다고 할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한신메디피아는 치매를 가려내기 위한 기존 혈액검사에 AI의 뇌 노화 분석 서비스를 추가해 고령자들을 위한 패키지 검진 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역량과 한계 분명히 인지해야”


AI를 활용한 검진이 완벽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환자의 흉부 X선 영상에서 AI의 학습량이 충분하지 않은, 새롭거나 희귀한 병이 보일 경우 AI가 내놓는 결과를 얼마나 검토해야 할 지는 논란이 될 수 있다. 의사가 자칫 놓칠 뻔한 부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는 점에선 AI가 도움이 되지만, 과거 데이터에 의존해 프로그래밍 된 기준 안에서만 판단을 내린다는 건 AI의 분명한 한계로 지적된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지난달 3일 개최한 ‘대한민국과학기술연차대회’의 ‘AI와 의료변화’ 심포지엄에서 이언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병원추진단장은 “병원마다 다른 진료의 질을 AI를 통해 끌어 올리면 어떤 병원이든 같은 수준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이훈상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 자리에서 “AI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며 “AI의 역량과 한계를 인지하고 의료를 보조하는 도구로 접근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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