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벌 없고 학벌 없고 부모 후광 없는 비주류 정치인… 일본 자민당 2인자 만나 총재선거 출마 뜻
스가 요시히데 |
건강 문제로 사임 의사를 표명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후임에 '2차 아베 정권' 개국 공신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사진) 현 관방장관이 부각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30일 "아베 총리 대타자로 스가 장관이 적임자라는 관측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킹메이커로 불리는 자민당 2인자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이 지난 6·7월 두 달 연속으로 스가를 만나 "다음번 총리를 하면 어떤가. 내가 응원하겠다"고 말한 사실도 전했다. 스가는 29일 니카이를 만나 총재 선거 출마 의사를 표명했으며 자민당 내 여러 파벌도 그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TV 아사히, TBS방송 등도 스가가 아베 정권의 정책을 계승하면서 코로나 사태를 수습할 '원포인트 릴리프(구원투수)'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소개했다. 30일 "스가 장관이 술은 못하지만 팬케이크를 좋아한다"고 집중 조명하는 TV 프로그램도 있었다.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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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가 아베 후임이 될 경우 부모 후광(後光), 파벌, 빼어난 학력이 없는 '3 무(無) 정치인'이 일본 총리가 되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는 일본에서 벽촌으로 알려진 아키타(秋田)현의 딸기 농가 출신이다. 고교 졸업 후 무작정 상경, 도쿄 골판지 공장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먹고 자며 돈을 모으다가 2년 후 진학한 대학이 호세이대(法政大) 야간 법학부였다. 그는 이 대학에 입학한 이유로 "학비가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음식점 종업원, 경비원 등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주경야독으로 대학을 마쳤다. 대학을 졸업할 때부터 정치에 뜻을 가져 의원 비서관, 요코하마 시의원을 거쳐 1996년 자민당 공천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무명의 정치인이었던 그는 2002년 북한 문제를 계기로 아베를 만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스가가 당시 북한의 만경봉호 입항 금지를 위해 항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자, 관방 부(副)장관으로 대북 강경 정책을 주장했던 아베가 "함께 일해 보자"며 다가왔다. 스가는 이때부터 아베와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고, 2006년 아베가 1차 집권하자 배지를 단 지 10년 만에 총무 대신에 발탁됐다.
/조선일보 |
스가는 아베가 궤양성 대장염으로 집권 1년 만에 사퇴한 후에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차기 총리는 당신밖에 없다"며 그의 출마를 설득, 제2차 아베 정권 출범에 기여했다.
스가는 2019년 4월 나루히토 일왕의 새 연호 레이와(令和)가 쓰인 액자를 들어 올리며 연호를 발표해, '레이와 오지상(레이와 아저씨)'으로 불리며 인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이는 1989년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 헤이세이(平成)를 공표했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관방장관이 나중에 총리가 된 것을 연상시켰다. 그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일본인이 생겨난 것은 이때부터였다.
스가는 7년 8개월 넘게 일본의 최장수 관방장관을 하면서 일본 관가를 장악한 것이 장점이다. 그에게 모든 정보가 들어오게 했고, 2014년 내각 인사국을 설치해 주요 부서 국장이 되려면 그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게 했다. NHK 개혁, 휴대폰 요금 인하 등 국민이 바라는 것을 적시에 내놓는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아베와 일심동체(一心同體)였던 그가 일본 사회를 개혁하기에는 한계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의 경제 정책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 코로나 대책 실패 등에 그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한국과 관련해 스가는 이병기 전 주일대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밀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의 위안부 합의 사실상 파기, 징용 배상 요구 이후에는 강경파로 바뀌었다는 관측이 많다. 2014년 하얼빈역에 안중근 기념관이 만들어지자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테러리스트"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자민당은 다음 달 중순 후임 총리 선출 절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당원 투표를 하지 않고 중·참의원 의원 394명과 광역지자체에서 3명씩 뽑은 대표 141명의 투표로 다음 달 15일쯤 차기 총재를 결정할 전망이다. 내각책임제인 일본에선 여당 총재가 총리로 선출돼 왔다. 이 방안이 확정되면, 당원 투표에서 우위를 보여온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은 불리해진다. 올 들어 차기 총리 적임자를 묻는 모든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해 온 이시바가 반발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도쿄=이하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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