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지마 다케시(中島岳志) 도쿄공업대 교수 인터뷰
그런 만큼 후임 총리는 누가 될지, 그가 어떤 성향을 띨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자민당 내 다수 파벌의 지지를 받아 차기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조회장,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과 역시 현재 자민당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선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지난 3일 나카지마 다케시(中島岳志) 도쿄공업대학교 교수를 만나 이들 3명의 정치 성향과 정국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최근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장파 학자로 꼽히는 그는 정치인의 저서, 인터뷰, 대담집 등을 통해 그들의 깊은 생각을 읽어내는 연구방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9명의 정치인을 분석한 ‘자민당, 가치와 리스크의 매트릭스(한국에서 ‘일본의 내일’(생각의힘)으로 출간)’는 최근 한국 언론에서 포스트 아베 후보를 소개할 때도 널리 인용되고 있다.
나카지마 다케시(中島岳志) 도쿄공업대 리버럴아트 연구교육원 정치학 교수. [사진 본인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는 스가에 대해 “아베와 달리 이데올로기가 옅어 얼마든지 다른 정책을 할 수 있다”면서 “대중의 인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치인”이라고 분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아베 총리의 퇴진은 예상했나.
A : 건강문제가 불거지면서 급속하게 레임덕이 진행되면 아베는 곧 퇴진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베가 후임을 지명하거나 임시 대행을 두지 않은 것은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힘을 남기지 않고 그만둔 건 평가한다.
Q : 아베 2차 정권 7년 8개월을 평가한다면.
A : 마이너스의 유산을 많이 남겼다. 2013년 특정비밀보호법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으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정부에 생겼다. 자연히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기를 꺼리게 됐다. 아베 정권에선 관료와 언론이 알아서 손타쿠(忖度·위의 뜻을 헤아려 행동함)를 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언론이 정부에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걸 꺼리게 됐고, NHK는 정부의 홍보기관이 됐다. 측근 특혜 의혹인 모리토모·가케학원 문제에선 관료들이 알아서 자료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가 적은 비용으로 시민들을 지배할 수 있는 기반을 아베 내각이 만들었다. 수십 년 뒤 역사가들은 아베 정권에서 생각보다 큰 변화가 있었다고 평가할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달 28일 오후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사의를 공식 표명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Q : 아베가 일본의 보수주의를 후퇴시켰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A : 보수의 원점은 나를 포함한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상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일단 상대편의 의견을 듣고 그 안에서 접점을 찾는 게 보수 정치의 기본이다.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총리를 상당히 훌륭한 보수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정치는 60점이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만 옳다고 100점을 따내려고 하는 건 공산주의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베는 전혀 보수 정치를 계승하지 못했다. 야당 의견을 무시하고 각종 법안을 강행 처리했고, 국회에서 야당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장면이 없었다. 오히려 중국 공산당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가깝다.
Q : 아베의 외교는 어떻게 평가하나.
A : 동아시아 정세가 크게 바뀌고 있는데 미·일 동맹만 중시하느라 대응이 늦었다. 아베 정권 동안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지위는 상당히 떨어졌다. 북한 문제는 아예 같은 무대에 서지도 못하고 배제됐다. 특히 한국과 싸울 때가 아니다. 한국, 동남아, 인도 등과 연대해서 중국의 폭주를 견제할 리더십을 일본이 발휘했어야 했다.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도 개선하지 못했고 미국엔 끌려다녔다.
Q : 스가는 어떤 총리가 될까.
A : 스가는 아베와 상당히 다르다. 스가는 인터뷰에서 “아베와 만났을 때 자신에게는 없는 국가관이 있어서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솔직히 고백한 바 있다. 그에겐 강한 이데올로기나 국가관이 없다. 권위주의적인 점은 아베와 비슷하지만, 뼛속까지 우파는 아니어서 다른 정책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스가는 파워게임, 즉 어떻게 권력을 장악해서 강한 리더로 군림할 것인지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대중의 욕망에 상당히 민감하다.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NHK 수신료 인하 등 대중이 좋아하는 ‘요금 인하 정책’에 강하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주민들의 반발이 생기니까, 디즈니랜드를 지어주겠다고 하는 식이다. 어떤 면에선 포퓰리스트다.
Q : 스가 체제의 한ㆍ일관계는 어떻게 바뀔까.
A : 이데올로기에 구애받지 않는 스타일에 비춰볼 때 ‘드라이한’ 교섭이 될 수 있다. 역사 인식과 관련해 우파적 고집도 별로 없기 때문에 철저히 이해관계에 기반한 외교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Q : 스가가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 참배는 어떻게 할 것으로 보나.
A : 스가는 기본적으로 흥미가 없을 것이다. 역사 인식에 대한 강한 고집이 없다. 한국, 중국 관계 개선에 뜻이 있다면 역사문제는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익들의 지지 기반이 필요하다 싶으면 갈 수도 있다.
차기 일본 총리 유력 후보들. 왼쪽부터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로이터·AFP=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Q : 기시다가 ‘포스트 아베’로 유력했는데, 아베는 왜 후임으로 지명하지 않았을까.
A : 기시다는 뭘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은 ‘블랙박스’ 같은 정치인이다. 파워게임에도 약하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체결한 당사자인데, 문재인 정부에서 백지화 위기에 놓였을 때 아무런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았다. 아베는 퇴임 후에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기시다를 후계로 생각했다가 포기한 것 같다.
Q : 이시바는 아베와 완전히 대척점에 서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 : 이시바는 역사 인식에 있어서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신중한 입장이고 정치인들의 역사 왜곡에도 단호하다. 경제 정책에서도 최근 사회안전보장망을 강화하는 쪽으로 바뀌어서 가치문제 뿐 아니라 부의 배분 문제에서도 아베와 완전히 대척점에 섰다. 자민당이지만 야당의 입장과 비슷하다. 아베의 자민당에서 동지를 만들기 어려웠던 이유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 2일 오후 일본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후임을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스가 관방장관. [교도=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Q : ‘포스트 아베’ 후보 3인 중에 가장 한국과 관계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A : 이시바라고 생각한다. 아시아판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만들어 집단안보전선을 구축하자는 게 이시바 생각이다. 미·일동맹에만 기대는 안보구상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Q : 스가는 파벌에 속해있지 않아서 기반이 불안정하다는 지적이 있다.
A : 그렇기 때문에 총리가 되면 더욱 지지율에 신경을 쓸 것이다. 무파벌이었던 고이즈미 총리도 그랬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스가 정권은 정당성을 잃게 된다.
Q : 아베는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유지할까.
A : 아베 정권은 아베의 힘만으로 이끌어온 게 아니라 스가 등 주변이 떠받쳐온 정권이었기 때문에 아베의 영향력은 급속히 약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외교에 있어선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어할 것이다. 때문에 차기 총리가 아베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인물을 외상에 앉힐 가능성이 높다.
Q : “자민당 중의원의 40%가 아베 칠드런”이라고 분석한게 화제가 됐다.
A : 1993년 아베가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됐을 때만 해도 자민당의 스펙트럼은 다양했다. 하지만 아베가 총재였던 기간 중 총 3번의 중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이때 처음 당선된 젊은 의원들은 우파적 이데올로기 색이 강하고 자기 책임론을 기조로 하는 특징이 있다. 말 그대로 ‘아베 칠드런’, ‘아베 키즈’다. 문제는 이들이 5~10년 뒤에 장관, 총리 후보가 된다는 것이다. 아베가 물러나더라도 아베 색깔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Q : 차차기 총리로는 누구를 주목하나.
A : 이시바는 이번에는 어려워도 차차기 가능성이 있다. 총무상을 지낸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딸 오부치 유코(小渕優子)를 주목한다. 일본에서도 여성 총리가 나와야 한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