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9 (목)

이슈 최악의 위기 맞은 자영업

‘백년가게’도 못 버텼다…자영업자 폐업 속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반년 넘긴 코로나로 한계 상황

3대째 남대문시장 지켜온 가게

“월 30만원 버는데

임대료 더이상 못 버텨” 가업 포기

명동은 한 집 건너 한 집 문 닫아

“매출 자체가 없어…아예 바닥났다”


한겨레

6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필요한 물건을 사러 나온 시민들과 간혹 외국인 관광객을 찾아볼 수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백년가게’. 서울 남대문시장 ㄴ상회 입구에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현판이 붙어 있다. 30년 이상 사업을 가꿔온 소상공인들에게 중소벤처기업부가 주는 ‘인증’이다. 아버지의 아버지 대부터 3대째 관광객들에게 홍삼과 건강식품을 팔며 남대문시장을 지켜온 박아무개(67)씨는 최근 사업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절망적인 상황 때문이다. 한달 내내 가게를 지켜도 매출이 30만원 안팎이다.

다행히 건물주가 임대료를 크게 깎아줬지만, 직원 3명을 모두 해고한 뒤에도 수지를 맞출 방법이 없다. 5일 낮 <한겨레>가 시장을 찾았을 때 박씨는 철거 중인 가게를 지켜보고 있었다. “장사가 잘되던 시절에는 하루에 관광객이 많게는 1000명도 왔어요. 요즘은 하루에 손님 한 명 만나기도 힘들어요. 더 버틸 수가 없어요.” 박씨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겨레

남대문시장 내 남대문상가의 안경점 다수가 문을 닫은 모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자영업자들이 스러지고 있다. 반년을 넘긴 ‘코로나 불황’에, 수도권에선 준3단계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면서 한계를 넘긴 점주들이 간판을 내리고 폐업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안양에선 주점을 운영하던 60대 자매가 생활고를 겪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준3단계 거리두기 일주일을 맞은 5일 서울 도심 번화가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백신이 나와야 끝날 위기”라며 절망감을 호소했다. 서울에서 가장 번화했던 명동 거리는 최근 한 집 건너 한 집은 문을 닫아 폐업한 점포를 세는 게 의미 없을 정도다. ㅅ설렁탕이나 ㄴ화장품매장 등 ‘이정표’ 구실을 했던 프랜차이즈 업체조차 휴업이나 폐업으로 텅 빈 지 오래다. 관광객들 때문에 발 디딜 틈 없던 골목길 영세업체들의 처지는 더 처참하다. 주한중국대사관 인근 좁은 골목길에 줄지어 선 점포 13곳의 사정을 확인해보니 7곳이 이미 주인을 잃고 ‘임대 문의’를 붙여두고 있었다.

상인도 관광객도 없는 텅 빈 골목을 지키던 한아무개(50)씨는 “지금은 코로나19 이전 매출과 비교할 매출 자체가 없다. 아예 바닥이 났다”고 말했다. 명동에서 16년 동안 장사를 해온 그는 이날 오후 4시까지 ‘개시’도 못한 상태였다. 그나마 손님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은 ‘폐업 정리’를 위해 물건을 떨이로 파는 가게뿐이었다. 통계청 기준 지난 6월 하순 국내 자영업자는 6개월 전과 비교할 때 13만8000명(2.5%) 줄어든 547만3000명이다. 이미 자영업자들이 한계에 이르렀던 점을 고려하면 코로나19 재확산 뒤 자영업자 수는 더욱 가파르게 감소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5일 낮 폐업 정리에 들어간 남대문시장 내 가방가게에 손님이 몰려 구경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거리. 이웃한 점포 3개가 모두 폐업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당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거리의 노점상들도 “차라리 쉬는 게 이익”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노점상은 “열흘 넘게 장사를 쉬었다”고 말했다. 리어카 주차비 등 유지비가 하루 2만~3만원 드는데, 코로나19 재확산 뒤 하루 2만~3만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쉽지 않았던 탓이다. 2주 만에야 노점상들이 하나둘 매대를 열었지만 이들을 찾는 손님은 없었다. 박영규(68) 남대문시장상인회 부회장은 “시장 점포가 1만2500개 정도인데, 4000여개는 비었다. 상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숨 막힌다’는 소리다”라고 전했다. 전례없는 위기 앞에선 자구책도 별 소용이 없다. 서울 강서구에서 곱창집을 하던 채아무개(38)씨도 지난달 31일 폐업했다. 식당만 10년을 운영한 채씨는 “이렇게 힘든 적이 없었다”며 “세월호 참사 때도, 메르스 때도, ‘김영란법’ 통과로 관공서 주변 상권이 죽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매출이 잘 나오면 3000만원도 찍던 가게지만 폐업 직전 월 매출은 650만원가량으로, 임대료에 인건비를 빼면 적자다. 포장과 배달로 돌파구를 찾아보려 했지만 준3단계 거리두기 도입 이후 야간영업마저 어렵게 되자 가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인천 서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전아무개(36)씨도 “준3단계 거리두기 뒤 직원들을 쉬게 했는데 일주일 연장 소식을 듣고 ‘일주일 더 쉬어야겠다’고 말해야 했는데 너무 미안했다”며 “코로나19 이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라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채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