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배 과밀 인원 등 악명 높은
그리스 ‘모리아 캠프’ 전소
터키에 돈 주고 난민 보내다
수용 거부 직면해 ‘나 몰라라’
EU 중 독일만 “수용” 의사
화마에 쫓겨 황급히 피하는 난민들 유럽 최대 난민촌인 그리스 레스보스섬의 ‘모리아 캠프’에서 9일(현지시간) 난민들이 치솟는 불길을 피해 뛰어가고 있다. 모리아 캠프에선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큰 화재로 난민시설이 불타면서 1만3000여명의 난민들이 갈 곳을 잃었다. 레스보스 |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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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이 또 집을 잃었다. 유럽 최대 난민수용시설인 그리스 레스보스섬의 ‘모리아 캠프’에서 화재가 발생, 난민 1만3000여명이 갈 곳을 잃게 됐다. 모리아 캠프는 유럽연합(EU)의 수용 거부로 오갈 데 없는 처지였던 난민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과밀과 열악한 상황으로 악명이 높았다. 모리아 캠프 화재로 EU 난민정책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일부 국가에 돈을 주고 난민들을 떠넘기려 하는 등 주먹구구식 해법에 의존하다 참사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리스 국영방송 ERT는 “8일(현지시간)과 9일 모리아 캠프에서 화재가 발생해 난민시설이 모두 불에 탔다”고 보도했다. 소방당국은 “사상자가 없는 것이 기적”이라며 “현장이 지옥 같다”고 전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소방당국은 방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모리아 캠프에선 지난 2일 소말리아 출신의 난민 남성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등 35명이 양성 반응을 보였다. 환자들을 격리하고 단속하는 과정에서 가족과 떨어지기를 거부한 수용자 일부가 강한 불만을 표출했고, 관리자들과 언쟁을 벌인 직후 화재가 발생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그리스 정부는 레스보스섬 일대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번 참사는 예견된 것이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모리아 캠프가 열악한 상황으로 악명을 떨쳤다는 점에서다. 캠프의 최대 수용 가능 인원이 3000명이지만 한때 2만명 가까운 난민이 수용됐다. 화재 당시에도 1만3000여명이 살고 있었다. 기본적인 위생시설이 부족한 상황에 너무 많은 사람이 거주하면서 현장엔 쓰레기, 오물로 인한 악취가 넘쳐났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지난 4월 “모리아 캠프의 과밀화를 해결하지 않으면 코로나 대비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U의 난민정책도 도마에 올랐다. 돈으로 다른 국가에 난민을 떠넘기는 등 주먹구구식 해법에 의존하다가 참사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2011년 시리아 내전 이후 중동·아시아·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몰려들었고, 그리스는 난민들의 유럽행 관문이 됐다.
하지만 난민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EU는 2016년 터키와 협정을 맺었다. 터키에 지원금(60억유로)을 주는 대신 그리스로 유입된 난민들을 재수용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터키는 지난 3월 더는 난민을 수용할 수 없다고 했고 유럽으로 향하는 국경을 열었다. 협정에 따라 그리스에 있던 난민들의 다른 유럽 국가 이동도 막혔다. 난민들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참사가 벌어진 뒤에도 EU는 우왕좌왕하고 있다. 갈 곳이 없어진 난민들의 처리를 놓고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U는 보호자가 없는 아동과 청소년 난민 400명을 우선 그리스 본토에 있는 시설로 옮길 수 있도록 조처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머지 난민들의 경우 인근 수용시설로 분산한다는 방침만 정해졌을 뿐이다. 독일은 “인도주의의 재난 상황”이라며 모리아 캠프의 난민 1000명을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은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모리아 캠프 화재에 대해 “깊은 슬픔”을 표명하고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난민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독일 언론 도이체벨레는 9일 사설을 통해 모리아 캠프 사건은 “EU의 실패”라고 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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