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법계에서 진보의 상징이던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사진) 후임 문제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 정치권에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긴즈버그 별세 전 연방대법원을 구성하는 대법관 이념 성향은 보수와 진보가 각각 5명, 4명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성향인 점을 감안하면 보수 대 진보 비율이 6대3으로 한쪽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를 막기 위해 민주당은 긴즈버그 후임 문제를 선거 쟁점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페이엇빌에서 열린 대선 유세에서 "다음주에 (대법관) 후보를 지명할 것"이라며 "여성이 될 것이다. 아주 재능 있고 훌륭한 여성"이라고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긴즈버그가 세상을 떠난 지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같이 밝히면서 후임자 지명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또 그는 트위터를 통해서도 "대법관 선출은 의무라면서 지체 없이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신직인 연방 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 인준을 거쳐 임명된다. 상원은 공화당이 과반인 53석을 차지하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공화당 소속인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긴즈버그 후임자로 지명하는 인물에 대해 상원이 투표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인 린지 그레이엄 법사위원장도 이날 대통령 의중을 이해한다는 트윗을 올렸다. 그레이엄 위원장은 2016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대법관을 지명하려던 것을 저지한 후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해에 대법관 공석을 메우려고 하면 똑같은 일을 할 것'이라고 했던 소신을 저버린 것이다.
민주당은 대법관 선정을 대선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유권자가 대통령을 뽑고, 그 대통령이 대법관 후보를 지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의원은 본인 트위터에 "미국 국민은 차기 연방대법관을 선택하는 데 있어 발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며 "이번 공석은 새 대통령을 맞을 때까지 채워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부통령 후보는 "트럼프가 오바마케어(ACA)를 뒤집고, 이민자 보호를 중단하고, (낙태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사람을 지명할 것이라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에 따르면 긴즈버그는 숨을 거두기 며칠 전 "나의 가장 강렬한 소망은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교체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긴즈버그 별세가 새로운 논쟁 거리를 제공하면서 양당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있지만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에서 이탈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민주당이 인준 청문회와 투표를 막을 수 없다고 CNN이 전했다. NYT가 소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이 긴즈버그 후임자를 지명해야 한다는 응답은 41%로, 새로 당선된 대통령이 지명해야 한다는 응답자 53%보다 낮았다.
긴즈버그에 이은 대법관 후보로는 보수 성향 여성인 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고등법원 판사와 남아시아계 남성인 제6연방고법 애뮬 타파 판사, 쿠바계 여성인 제11연방고법 바버라 라고아 판사 등이 거론된다. 이들 중 배럿 판사가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NBC뉴스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 18일 긴즈버그는 췌장암 전이에 따른 합병증으로 워싱턴에 있는 자택에서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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