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어려울 때 친구해줬으니 무기 사준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군사AtoZ 시즌2-40]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 돈 버는(?) 친구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국제사회에서 유일한 잣대는 국익이다. 국익 가운데 1순위인 안전보장을 위해 각국은 끊임없이 노력을 한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늘 살피고 주의를 기울인다. 주변국의 위협을 관찰하고 대응해야 하지만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못해 곤란을 겪고 결국 종속되거나 나라를 빼앗기는 경우도 늘 있어왔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든든한 동맹이다. 같은 편에 서주고 정말로 어려울 때는 군사적으로 지원해준다. 이렇게 같은 편이서 좋았는데 결과적으로 그 나라는 또 다른 국익인 경제적 이득을 얻어간다. 최근에 이런 상황이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매일경제

라팔 전투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가 이웃 나라 터키에 시달릴 때 어려운 친구를 적극 돕고 있는 프랑스. 최근 그리스와 프랑스 간 관계를 보면 군사 지원과 무기 판매가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만큼 긴밀하게 얽혀 있다. 고질적인 경제난을 겪으면서 국방에 충분한 투자를 하지 못하던 그리스는 동지중해에서 천연가스와 석유 개발을 두고 터키와 갈등이 군사 대치로 번지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웠다. 글로벌 파이어 파워(GFP) 2020년 순위를 보면 터키는 11위이고 그리스는 33위다. 터키의 순위를 나토 국가 가운데서 따져보면 영국, 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다.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앙숙'인 터키와 그리스 사이에서 해양자원을 두고 갈등이 불거진 것은 지난해 여름부터였다. 외교 협상과 상호 비난전이 길어지자 결국 군사력이 동원되기 시작했고 추이를 지켜보던 프랑스가 그리스 편을 들어줬다. 터키가 나토 국가에 속해 있으면서도 친러시아 행보를 하는 등 유럽 다른 국가들과 계속 엇박자를 내는 것에 대해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지난 8월 13일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 2대와 해군의 라파예트급 함정이 그리스 지원에 투입됐다. 그로부터 한 뒤인 9월 12일 그리스는 무기 구매 계획을 발표했는데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 18대를 비롯해 해군용 무기가 포함됐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방위산업 수출품인 라팔이 동지중해에 파견된 목적에 에어쇼도 포함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와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편들어주고 돈 버는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미국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스텔스기 F-35 판매를 성사시킨 과정을 보면 중동 평화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달고 있는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인 UAE·바레인 간 외교관계 정상화 합의)'은 오히려 포장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 정도다.

중동의 수니파 국가들 가운데 UAE는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있고 바다 건너 최단 거리가 불과 80여 ㎞에 불과하다. 이란의 핵개발은 UAE에 생존이 달린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UAE가 안보를 확실히 하기 위해 가장 친하게 지내야 하는 국가 중 하나가 이란의 최대 적국인 미국이었다.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벌이기 직전까지 갔던 관계다. 미국은 UAE의 안보를 위해 외교, 군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원했다. 이 같은 지원을 하면서 무기 판매는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것처럼 따라붙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 평화를 위해 성사시켰다고 자랑하는 '아브라함 협정'도 이면을 들여다보면 미국의 F-35 판매라는 경제적 이득이 중요한 조건으로 붙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 중재로 이스라엘은 UAE, 바레인과 대사급 수교에 합의했다. 바레인은 수도 마나마에 미국의 중동 군사작전 본거지인 미 해군 5함대 사령부가 자리 잡고 있을 정도로 미국과 관계가 절대적이다. 하지만 UAE는 미국에 조건을 내걸었다. 이란의 군사 목표를 은밀하게 공격할 수 있는 F-35를 보유해 이란에 대한 전쟁억지력을 보유하기를 원했고 F-35 구매를 지속적으로 미국에 요청해왔다. 이에 대해 미국은 이스라엘 입장을 받아들여 판매 불허 방침을 고수해왔다.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가 스텔스기를 보유하는 것을 저지하는 게 목표였다. 이스라엘은 총리까지 나서서 아랍 국가인 UAE의 스텔스기 도입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은 '아브라함 협정'이라는 외교적 성과와 F-35 판매라는 실익을 거둘 수 있는 기회를 앞두고 이스라엘의 입장이 걸림돌이 되자 판매 불허 방침을 뒤집은 것이었다. 미국의 돌변에는 UAE의 벼랑 끝 전술이 그 배경에 있다. UAE는 이스라엘의 반대로 F-35 도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합의 백지화를 불사하는 강공을 펼쳐서 결국 F-35 도입을 성사시켰다. UAE의 강경한 태도를 보면 미국과 모종의 '사전 약속'이 있었지 않았나 할 정도였다. 미국이 F-35를 판매하고 그 반대급부로 UAE가 이스라엘과 수교하는 거래 관계가 미리 합의됐는데 이스라엘이 F-35 수입에 끼어들자 UAE가 판을 깰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다.

최종 결과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백악관에서 9월 5일 열린 이스라엘, UAE, 바레인의 외교관계 정상화 합의문 서명식이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UAE의 F-35 도입에 대해 "노 프라블럼"이라고 말했다.

[안두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