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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보험설계사·카드모집인 고용보험, ‘그림의 떡’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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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속성’·‘계약의 체결’ 등 걸림돌…가입률 미미 우려

보험사·카드사·GA 등 비용 부담 ↑…대량 해촉 일어날 수도

세계파이낸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비즈=안재성 기자]정부가 보험설계사, 카드모집인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에게 고용보험 적용을 추진하는 가운데 사실상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속성’, ‘계약의 체결’ 등을 중시하다 보니 가입률이 특고 산재보험처럼 지지부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보험사, 카드사, 보험 법인대리점(GA) 등의 비용 부담을 증대시켜 대량 해촉 사태의 유발도 염려된다.

◆“사업주가 고용보험 가입 막을 수 있어”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특고 노동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기 위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의결됐으며, 11일 국회로 넘어갔다. 이르면 연내 국회 통과가 예상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수입의 급감은 물론 고용 유지에도 위협을 받고 있는 보험설계사와 카드모집인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라 할 수 있다.

올해 8월말 기준 7개 전업카드사의 카드모집인 수는 1만655명으로 두 달 새 1048명 줄었다. 전년말 대비로는 727명 감소했다.

보험설계사의 경우 보험사 전속설계사 수(19만2639명)는 약간 늘었지만, GA 소속 보험설계사 수가 줄었다. 올해 6월말 기준 GA 소속 보험설계사 수는 23만2128명으로 전년말보다 642명 축소됐다.

그러나 실제로 특고 고용보험이 도입돼도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낼지는 의문이 존재한다. 우선 정부가 전속성과 계약의 체결을 중시하면서 가입률의 저조가 걱정된다.

현재 나온 특고 고용보험 관련 정부 개정안의 핵심은 특고 노동자를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대가를 얻는 계약을 체결한 노무제공자’로 정의한 뒤 대통령령으로 고용보험 가입이 가능한 특고 직종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열된 업종에 포함되지 못하면, 고용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

특히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특고 노동자는 다양한 직종과 관련 부처가 존재하고, 각각의 전속성이 달라 직종별 접근이 중요하다”며 전속성에 방점을 찍었다. 전속성은 특고 노동자와 사용자와의 계약이 일정 기간 유지되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이 발생돼야 충족된다.

하지만 보험설계사와 카드모집인은 이직이 잦은 데다 한 번에 여러 회사와 계약을 맺기도 해 고용보험 가입 시 전속성의 벽에 부딪힐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계약의 체결을 고용보험 제도의 적용을 받는 특고 노동자 정의의 요건으로 설정했다. 이는 근로기준법에서 계약의 체결 여부를 근로자 정의의 요건으로 두지 않는 것과 크게 다르며, 사용자에게 너무 큰 권한을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적으로 보험사나 GA 혹은 카드사가 해당 보험설계사 또는 카드모집인과의 해촉을 무기삼아 휘두를 수 있는 것이다. 한 보험설계사는 “회사가 해촉 운운하면 무서워서 고용보험 가입을 요구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특고 고용보험이 특고 산재보험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고 산재보험은 지난 2008년 도입됐지만, 지난해까지 11년간 가입자 비중이 겨우 3%에 불과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정훈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전속성을 기준으로 한 직종 열거 방식은 특고 산재보험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문제를 드러냈기 때문에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고용보험에 가입 가능한 특고 노동자의 범위를 최대한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애림 서울대학교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현재 다수의 특고 노동자가 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하고 있다”며 “계약의 체결을 고용보험 가입 조건으로 두면, 이를 적용받는 특고 노동자는 10%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고 꼬집었다.

◆“고용보험 때문에 직장 잃을라”

무엇보다 보험설계사와 카드모집인들에게 고용보험 가입은 혜택이 아닌, 거꾸로 고용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염려가 크다.

특고 노동자는 물론 사측도 비용 부담을 나눠지므로 비용 증가를 꺼려한 사측이 대량 해촉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 40만명에 달하는 보험설계사가 모두 고용보험에 가입할 경우 보험사와 GA가 감당해야 하는 관련 비용은 매년 약 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인한 영업 불황에 시달리는 보험사와 GA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특히 보험사나 대형 GA는 어떻게 돈을 마련한다 해도 중소형 GA는 추가되는 비용을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GA업계 관계자는 “일부 중소형 GA는 고용보험료를 각 본부나 지점에 전가하는 방안까지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충격이 큰 카드사들 역시 새롭게 늘어나는 비용은 전혀 반갑지 않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 결제 관련 손실을 대출 관련 이익으로 메꾸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자칫 적자전환까지 염려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때문에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보험설계사 및 카드모집인이 될 거라는 예측이 제기된다. 보험료 부담은 물론 저실적자부터 대거 해촉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카드모집인은 “회사가 순순히 고용보험료를 지불하겠냐”며 “실적이 낮은 사람부터 골라서 해촉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4개 직종(보험설계사·가전제품 설치기사·택배기사·골프장 캐디)에 종사하는 특고 노동자 2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2.8%가 일괄적인 고용보험 의무적용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고용보험 의무가입이 사업주 부담 증가로 이어져 본인들의 일자리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답변도 68.4%나 됐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최저임금 고율 인상으로 취약계층의 취업 감소가 나타났듯이 특고 고용보험 의무적용은 관련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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