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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빵값 걱정' 아프리카 수단, 미국과 '테러지원국' 해제 협상 나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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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이스라엘에 튼 물꼬가 바레인에 이어 아프리카 수단으로 이어질까. 수단이 21일(현지시간) 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미국 정부와 고위급 회담에 돌입했다. 수단은 미국에 경제 지원을 요구했는데, 사실상 미국과 대이스라엘 수교 협상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왔다. 수단 과도정부는 이스라엘과 수교 문제는 선거로 선출된 차기 정부가 정해야 한다면서 부인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주요 외교 성과로 내세우려 한다. 반면 이슬람교도 인구가 70%인 수단에서는 이스라엘과의 수교에 대한 국내 여론이 별로 좋지 않다. 수단은 1993년 수니파 극단조직 알카에다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미국에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다. 20년 넘게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은 데다 내전까지 겪었다. 최근에는 코로나19와 홍수로 최악의 식량 위기에 처했다. ‘빵값’이 걱정인 수단은 경제 숨통을 틔우려 미국이 지정한 테러지원국에서 벗어나고자 미국과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수단 “우린 과도정부…이스라엘 수교는 차기 정부가 결정”

압델 파타 알부르한 수단 주권위원회위원장은 이날 아부다비에서 미국 정부 관계자, UAE 지도부 등과 고위급 회담에 돌입한다고 수단 국영언론 SUNA가 전날 전했다. 나세르-에딘 압델바리 수단 법무장관은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수단을 삭제하고, 수단에 대한 부채를 탕감하는 내용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언론 악시오스는 전날 익명의 미국 관료를 인용해 수단과 미국이 이스라엘 수교 문제를 둘러싼 ‘결정적인 협상’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그러나 파이잘 모하메드 살레 수단 정보부 장관은 22일 수도 하르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단 각료 대표단은 이스라엘과의 정상화를 논의할 의무가 없다”면서 수교 문제는 현 과도정부가 아닌 “선출된 정부의 임무”라고 말했다. 수단 과도정부는 지난 8월25일 하르툼에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도 ‘과도정부’라 결정 권한이 없다면서 이스라엘과 수교를 거절했다. 당시 압달라 함독 수단 총리도 2022년 총선 후에야 이스라엘과 수교 여부를 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단 정부는 같은 달 19일 “이스라엘과 평화협약을 맺기를 기대한다”고 논평한 외교부 대변인을 해임까지 했다. 이스라엘과 수교 문제를 두고 수단 정부가 분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수단 정부의 공식적인 부인과는 별개로 미국과의 물밑 협상은 진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악시오스는 수단 정부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대가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외에도 30억달러 이상의 인도적 지원, 앞으로 3년간 미국·UAE의 경제 지원 약속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조짐은 전부터 있었다. 지난 2월 알부르한 위원장이 우간다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비밀리에 만난 사실이 알려져 수단에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국내 반발이 커지자 알부르한 위원장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수단 정부의 지지가 “확고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으나, 2월부터 이스라엘 상업용 비행기들이 수단 상공을 비행하기 시작했다.

‘빵값’ 걱정에 비상사태 선포까지

수단은 무슬림 70%와 기독교 등 기타 종파로 구성된 나라다. 군부 출신 오마르 알바시르 전 대통령이 30년간 독재하다가 지난해 4월 군부 쿠데타로 축출됐다. 전 정부가 빵값을 70% 올리자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고 있었는데, 혼란을 틈타 신군부가 또다시 쿠데타로 집권했다. 현 정부는 민간 기술관료와 군부가 연합한 과도정부다.

수단 북부에는 이슬람교·아랍계 사람들이, 남부에는 기독교·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주로 살았는데, 50년간 두 차례 내전 끝에 2011년 남수단이 독립했다. 그 여파로 보유 유전의 75%를 잃었다. 알카에다 지원을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1993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받았고, 1997년부터 2017년까지 테러 지원·인권 유린·종교 박해 등을 이유로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았다. 2017년 제재는 해제됐지만, 테러지원국 지위가 남아 금융 거래 등에 제약이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980달러(114만원)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수단은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와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7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식량 불안에 처한 수단인은 960만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170%였고, 통화가치가 하락했으며 빵을 비롯한 식품 가격이 몇 주 동안 50% 올랐다. 설상가상으로 한 달 넘게 이어진 폭우로 120명 이상이 숨지고, 50만명이 주택 파괴 등 피해를 겪었다. 급기야 과도정부는 지난 5일부터 3개월간 경제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경향신문

수단의 소년들이 17일(현지시간) 수도 하르툼에서 남서쪽으로 약 35㎞ 떨어진 살마니야 마을에서 임시로 만든 뗏목을 타고 침수된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수단 정부는 홍수로 100여명이 숨지고 주택 10만 채가 부서지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르툼|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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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지라는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는 수단에서 민감한 문제이지만, 과도 정부가 협상에 나선 이유는 갈수록 커지는 경제 위기를 해결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수단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돼야 국제 금융기관에서 차관을 빌릴 수 있고, UAE와 미국의 경제 원조도 절실하다는 것이다.

미 의회에선 공화당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이 수단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스라엘과 수단의 수교를 위해 이 법안을 10월까지 통과시켜달라고 여야에 당부했다고 악시오스가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8월 하르툼 방문 당시 수단 정부에 알카에다의 1998년 아프리카 주재 미 대사관 테러와 2000년 USS 콜호 테러로 사망한 유가족에 대한 보상금 3억 달러를 요구했고, 수단 정부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포린폴리시가 전했다.

수단이 이스라엘의 잠재적 수교국에 포함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엘리 코헨 이스라엘 정보부 장관은 지난 8월 UAE에 이은 차기 유력 수교국으로 오만, 모로코와 함께 수단을 꼽았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지난 19일 론 더머 미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가 내년 1월까지 이스라엘이 최소 2개국과 평화협정을 맺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15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이스라엘과 UAE·바레인의 관계 정상화 협정 서명식에 앞서 5~6개국이 이스라엘과 추가적인 평화협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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