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7 (일)

이슈 정치권 사퇴와 제명

[레이더P] 내치기 혹은 감싸기·살길 모색...정당 제명의 역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주요 사건 중 하나가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이다. 1979년 10월 여당인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외신 인터뷰 내용을 문제 삼아 국회의원직 제명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일이다.

당시 김 총재는 인터뷰에서 "미국이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압력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을 제어해줄 것"이라 말했다. 의원직에서 제명되자 김 총재는 "영원히 살기 위해 일순간 죽는 길을 택하겠다"고 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발언도 이때 나왔다. 이후 한국 정치사에 큰 영향을 준 일들이 이어졌다.

최근 정치권에서 제명 이야기가 많다. 최근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더불어민주당에서 제명된 김홍걸 의원이 대표적. 그러나 이는 의원직 자체는 유지하는 당으로부터의 제명이다.


제명 대신 당원권 정지


국정농단 사건 당시 갈라선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사이에 김현아 전 의원은 새누리당 소속 비례대표이면서 바른정당의 활동을 하는 신세에 놓였다. 비례대표가 탈당을 하면 의원직을 상실하는 법 조항 때문이었다. 김현아 전 의원과 바른정당 측은 제명 혹은 출당을 요구했지만, 당시 새누리당 윤리위원회는 김현아 전 의원에게 당원권 정지 3년의 징계를 내렸다.

이에 바른정당 소속이었던 하태경 의원은 "김현아 의원을 제명 처리하지 않은 새누리당은 과거 통진당(통합진보당)보다 치졸하다는 비판을 들어도 싸다"고 비난했다. 이어 "2012년 통진당은 비주류 계열 비례의원 4명을 제명 처리해 비주류가 원하는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며 "그런데 새누리당은 자기 당의 색깔과 맞지도 않는 의원을 구금하다시피하여 정치적 고문을 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아 전 의원은 1년 뒤 바른정당에서 복당한 김성태 원내대표 체제에서 당원권 정지가 해제됐다.

당시 새누리당은 같은 날 이한구 전 공천관리위원장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이병석 전 국회부의장 등은 제명 조치했다. 윤리위원회는 기소된 점에 책임을 물어 결정했다고 밝혔다.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속전속결 제명 결정

유력 대선후보로 꼽혔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2018년 3월 5일 수행비서를 지냈던 김지은 씨가 성폭행 및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피의자인 안희정 전 지사는 재판 과정에서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했고 성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그는 1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2심에선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았고, 3심은 대법원이 그와 검찰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면서 2심 판결을 확정 지었다.

안 전 지사의 제명과 출당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김씨의 폭로 보도가 나온 날 밤 민주당은 긴급 심야최고위를 열어 그를 출당·제명하는 절차를 밟기로 결정했다. 당 최고위가 심야에 긴급히 모이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연 당시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당 대표로서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당은 긴급 최고위원회를 소집해 안희정 도지사에 대해 출당 및 제명 조처를 밟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제명은 이튿날 결정됐다. 당시 백혜련 민주당 대변인은 "윤리심판원은 피해자 인터뷰와 안 전 지사의 SNS 입장문 등을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충남도청 관계자를 통해 안 전 지사에게 소명 기회를 부여했지만 (안 전 지사로부터) 소명하지 않겠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했다.


셀프 제명과 취소 사태


21대 총선을 앞두고 바른미래당 비례대표 8명은 의원총회를 통해 '셀프 제명'을 의결했다. 비례대표는 탈당의 경우 의원직을 잃기 때문에 직을 유지하면서 당을 옮기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의 후신인 민생당이 이들의 '셀프 제명' 절차 취소를 요구하며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문제가 벌어졌다.

미래통합당과 국민의당으로 넘어갔던 비례대표 의원들의 당적이 다시 민생당으로 돌아와서다. 김삼화·김중로·김수민·신용현·이동섭·임재훈 등 6명은 이미 미래통합당에 입당했고, 이태규 의원은 국민의당을 택했다. 이상돈 의원은 무소속으로 남은 상태였다.

민생당은 "바른미래당 당원자격 '셀프 제명'은 당헌·당규와 정당법을 위반한 것으로, 원천적으로 무효"라며 가처분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법원은 "정당에서 비례대표가 제명 대상자로서 그 의결에 참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헌법이나 공직선거법, 국회법, 정당법 등 관련 규정 및 입법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비례대표가 정당에서 이뤄지는 자신에 대한 제명 결의에 직접 참여한 경우 그러한 결의에는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민생당으로선 '셀프 제명' 의원들의 당적이 돌아와 소속 의원 26명으로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갖추면 총선 관련 보조금 규모 등이 유리해진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결국 셀프 제명 후 바른미래당 전신 국민의당 비례대표 1번이었던 신용현 전 의원은 미래통합당 경선 도중 공천 배제되는 상황에 놓였다. 이틀 뒤 김삼화·김수민·김중로·이동섭 등 4명은 민생당을 탈당해 의원직 없이 통합당에 입당했다.

[김명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