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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기자수첩] 중소조선소 살릴 대책은 세우지 않는 국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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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대선조선에 다니는 A씨는 4년 전인 2016년 7월부터 월급의 10%를 반납하기 시작했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말에 직원들 모두 힘을 모으기로 약속한 것이다. 4년 후, 기업이 흑자로 돌아서도 똑같았다. 이달에는 결국 월급의 50%만 받았다. 코로나19로 선박 발주가 끊기면서 흑자도산이 우려되는 까닭이다. A씨는 "올해 초부터 자금이 부족하다고 계속 말했는데도, 채권단이 대비책조차 고려하지 않았다"며 "결국 직원들과 협력업체에 줄 돈을 더 줄이라는 말밖에 안 된다"고 했다.

STX조선해양에 다니는 B씨의 상황도 비슷하다. 그를 포함한 500여명은 2018년 하반기부터 두개조로 나뉘어 6개월은 일하고, 6개월은 무급휴직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왔다. 회사는 순환 무급휴직 2년을 약속했지만, 3년째에 접어든 뒤에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2개월간 파업한 끝에 결국 정부 지원 공공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이달 장윤근 STX조선해양 사장의 ‘경영정상화’ 다짐에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2년 전과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중소조선업계 직원들이 고사(枯死) 위기에 아우성치고 있다. 드물게 진행해온 수주가 코로나19로 뚝 끊긴 탓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중형조선사의 수주량은 전년 대비 38.7% 감소했다. 조선업계 특성상 배를 실제로 인도하는 마지막 시점에 선주로부터 선박 대금의 대부분을 받는 ‘헤비테일’ 계약이 많은데, 신규수주가 멈추면서 이전에 수주한 선박 건조 자금을 마련하는 데도 어려움이 생겼다.

그러나 중소조선소 4곳의 대주주인 국책은행은 조용하다. 중소조선소들의 유동성 악화에도 대응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2016년 발표한 ‘스스로 생존하지 못하면 법정관리 등 처리 방향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방침을 잘 지킨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국책은행이 여태껏 경영 위기를 겪는 중·소형 조선소 회생안 방향조차 정하지 못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소조선업계 내부에서도 "중형조선소의 법정관리를 바라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쏟아진다. 조선업을 위한 정부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나 대형 조선소 중심이고, 국책은행이 제시한 수주가이드라인은 시장가격을 웃돌아 번번이 수주를 놓치는 탓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로 전 세계 발주가 반 토막 났는데 수주가이드라인만 내세우니 국내 조선소들은 ‘최고가(最高價)’를 제시하는 꼴이 됐다"는 소리도 나온다.

물론 경쟁력이 없는 회사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소조선이 차례로 무너지면, 조선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대형조선소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국내 중소 해운사들도 일본과 중국 조선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버티다간 조선·해운업계 모두 흔들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최근 국책은행 산하 중소조선소는 잇따라 매물로 등장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주 급감에 매각 성사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선업 불황에서도 중·소형 조선소들의 실질적인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국책은행도, 정부도 조선산업 전체를 보고 구조조정 계획을 세우고 체질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안소영 기자(seenr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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